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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Mar 27. 2021

남에겐 가을서리, 자신에겐 봄바람

17편 양화(陽貨) 제12장

  공자가 말했다. “얼굴빛은 사나우면서 속은 나약한 사람이 있다. 소인에 비유하자면 구멍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이라 할 것이다.”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

  자왈   색려이내임    비저소인  기유천유지도야여          

  


  색려내임(色厲內荏)에서 갈 려(厲)는 사납다, 엄격하다, 매섭다는 뜻이고 들깨 임(荏)은 연약하다, 유약하다는 뜻입니다. 겉은 사나운데 속은 부드럽다 하면 요즘 표현으로 츤데레에 해당하는 거 아니냐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츤데레는 겉은 쌀쌀맞고 인정사정 안 봐주는 듯 하지만 속은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을 뜻하는 일본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공자가 여기서 말한 색려내임의 인물은 소인이 아니라 대인에 해당합니다. 높은 관직에 올라 권한만큼 책임도 큰 사람입니다. ‘소인에 비유하자면’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색려내임한 대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한마디로 관료의 처세술을 집대성한 '채근담'에 나오는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을 반대로 적용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하직원에겐 가을서리(추상)처럼 매섭게 굴면서 정작 자산이나 자신과 가까운 지인과 상사에겐 봄바람(춘풍)처럼 부드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또 늘 신상필벌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결정 장애에 시달리는 상사를 말합니다. 부하들에겐 기한 준수를 엄격하게 요구하면서 정작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은 자꾸만 뒤로 미루는 스타일의 인물입니다.   

  

  직장상사로 이런 사람을 모시면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뭔가에 대해 책임질 생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쁜 성과가 나오면 대부분 부하 탓이고 좋은 성과가 나오면 전부 자기 덕이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결정 장애가 심한 이유도 그 결정이 잘못될 경우에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마련해두려 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그렇게 색려내임하는 리더를 벽의 구멍을 뚫고 몰래 담을 넘는 도둑에 비견했습니다. 도둑도 여러 종류인데 사람들에게 들킬까 무서워 남몰래 도둑질하는 좀도둑이나 다름없고 한 것입니다.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그걸 차지하고 앉아 온갖 유세를 떨면서 나라의 녹을 축내고 있으니 좀도둑이랑 뭐가 다르냐고 힐난하는 것입니다.    

   

  색려내임하는 리더가 많은 조직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티가 나지 않지만 서서히 조직을 좀먹고 그들의 ‘가스 라이팅’에 지친 인재를 하나둘 떠나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 발생했을 때도 좀처럼 스스로 옷 벗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조직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여서 더욱 해가 됩니다. 게다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사들을 금방 알아보기 때문에 자신들 편하자고 그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악순환을 빚어냅니다.     


  그럼 그런 사람을 중용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는 법은 없을까요? 최고 의사결정권자부터 인재의 옥석을 가리는 안목을 갖춰야 합니다. 설사 그런 안목이 부족해 색려내임하는 사람에게 속아서 그를 중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수인지 아닌지를 계속 살펴봐야 합니다. 의사결정이 빠른가? 그리고 그 결정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나 자기가 짊어지는가? 신상필벌을 강조할 경우 그것을 자신에게도 엄격히 적용하는가? 만일 그렇게 관찰하고도 그걸 가려내지 못했다면 바로 당신이 색려내임하는 리더가 아닌지 의심해 보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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