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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직장생활

직장에서의 담배

by 노르웨이신박


대학원을 마치고 회사에 입사했으니 사원 말년차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면 진급해 대리를 달수 있었다. 사무실은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순서로 앞줄부터 자리가 채워진다. 임원이상은 제일 뒷줄에 앉아 고개를 빼꼼히 치켜들면 직원들의 모니터를 모두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없어져야 할 문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제일 앞줄에 앉아 있다 보니 내 앞은 흡연실로 가는 통로였다. 흡연실은 매 층마다 화장실 옆에 붙어 있었는데, 3-4평 남짓 작은 공간에 생수통 하나와 재떨이 몇 개가 놓여 있었고 환기통은 늘 막혀있었다. 사람들이 몇 명 들어가 연기를 뿜어대면 금세 너구리굴이 되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러 생수통에 가려해도 흡연실로 가야만 했다.

C차장은 골초였다. 본인이 담배를 피우든 말든 뭐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담배를 태우러 가는 길에 꼭 몇 명 졸따구들을 데리고 나갔다.

L사원, K대리, K과장 한대 빨러가자.

나는 L사원에게 물었다.

자기 담배 안 피지 않았나?

예, 어제부터 다시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래 직원들이 빠지고 나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와 여직원들만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뭔가 불안해졌다. 나만 빼고 이것들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는 거 아닐까? 담배 한 대 피우는데 뭐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한참을 지나 담배 피우고 들어오는 C차장 무리들은 뭔가 끈끈하고 결연한 연합전선이라도 구축한 듯 당당했고, 무슨 신령한 영감이라도 받아 온 듯 구린 담배 연기와 함께 커억 커억 헛기침을 자신 있게 해 대며 자리로 돌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담배 무리가 빠져나갈 때마다 불안함과 소외감을 느낀 나는 종이컵에 봉지커피 하나를 쑤셔 넣고 흡연실로 무리에 묻혀 가보기도 했다. 너구리 굴속에서 나누는 대화 중에는 혹시 사무실에서 하지 못하는 고급정보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귀를 쫑긋 세웠다. 간접흡연도 사회생활에 일부로 감수해야 한다고 자위했다.

어느 합사(프로젝트를 위한 합동 사무실)에 잠깐 나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임원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H상무가 그랬다. 모부장, 모차장을 꼭 지명하며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봉지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지명받은 부장과 차장이야 금옥이라도 받은 듯 좋아서 따라나서지만, 다른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임원이면 생각했어야만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회 초년생들은 내가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건지 괜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반복되는 소외감은 불안감으로 커지면서, L사원처럼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런 일을 겪어본 후배들이 있는가?

불안해하지 말아라. 지나고 보니 모두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너구리 굴속에서 오가는 정보들이 정말 고급 정보였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알려질 정보일 테고, 불필요한 가십이었다면 모르는 게 더 낫을 수 있다. 흡연실에서 맺어진 연합전선은 한 모금의 담배 연기처리 허공에서 금세 사라져 버린 연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회사일을 배우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남는 것이다. 직장에서 담배로, 커피로 몰려다니는 무리들이 있다. 부질없는 연정이다. 그 무리에 속하지 않은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라. 그 무리 또한 허공에 담배 연기 같은 것이니, 그 시간에 하나라도 회사일을 열심히 배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묵묵히 자기 계발을 수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하면 언젠가 C차장이 아닌, H상무 아닌, 사장님의 선택을 받을 날이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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