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시절 부사장님과의 유럽출장
GS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WC 연구과제를 발굴해 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당시 L본부장님(부사장님) 께서 WC. 즉, 월드 클래스 상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셨다. 우리 팀은 해상풍력을 토픽으로 잡았고, 노르웨이 NGI와 SINTEF, 덴마크 Ramboll이 협력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내가 담당했던 노르웨이 NGI와의 연구과제는 연구소 단일 과제로는 당시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그 유명한 지반 cyclic 모델, UDCAM/PDCAM 모델이 이때 개발되었다)
프로젝트 점검차 노르웨이 출장 중에 급한 연락이 왔다. 부사장님 지시로 영국으로 빨리 넘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급하게 짐을 챙겨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부사장님과 몇몇 연구원들이 영국 출장 중이었고, 해상풍력과 관련한 미팅이 내일 잡혔는데, 부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다.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보고 드렸고, 영국 대학과의 회의도 잘 마무리가 되었다. 부사장님께서는 수고했다고 하시며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이후 영국 출장 일정에 동참하라고 하셨다.
출장을 가면 숙박비, 식사비, 일비가 지역별로 A, B, C 등급으로 나눠져 차등 지급된다. 당시 2009년 노르웨이 물가는 환율을 고려할 때 가히 살인적이었다. 같이 출장 간 동료와 함께 맥도널드 빅맥 세트 2개를 시켰는데 4만 원이 나왔다. (노르웨이 첫날, 공항에서 시내까지 30분 거리 택시를 탔는데 26만 원이 나왔으니, 이것이 나에게 노르웨이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노르웨이 출장비는 지역 B로 구분되어 있어 숙박비와 일비가 넉넉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사장님과 함께 출장을 가는 동안은 숙박비 제한이 풀리고, 식사는 모두 사주시니 내가 돈 쓸 일이 없었다.
부사장님과 나를 포함한 3명이 같이 식당으로 갔다. 중식당이었다. 음식은 부사장님께서 익숙하게 몇 가지 요리를 시키시며,
음식은 내가 알아서 맛있는 걸로 시켰다. 다 같이 먹자. 와인은 뭐가 좋을까…. 음.... C차장, 와인은 자네가 고르게. 자네가 와인 박사라며?
C부장은 기획실에서 일하는 선배였고, 와인 동우회 회장이었다. C차장은 평소에 먹고 싶었는데 못 먹어본 와인을 골라도 되냐고 물었다. 부사장님은 허허 웃으시며 맘대로 하라고 하셨다. C차장은 와인을 시켰고, 잠시 후 주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정장에 넥타이를 격식 있게 차려입은 중후한 식당 매니저가 와인을 들고 나타났다. 와인을 일일이 따라 주더니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대기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제일 비싼 와인을 시켰던 것이다. C차장은 와인 코르크를 따는 순간 온 식당이 와인향으로 가득 찼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식사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부사장님은 H선임에게 운전을 맡기며,
자네가 영국에서 운전을 좀 해 봤다며?
(영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좌측통행이고, 운전석은 차 오른쪽에 달려있다.)
이제 알았다. 왜 C차장과 H선임이 부사장님과 출장을 동행하게 되었는지. C차장은 회사에서 알아주는 와인 애호가였고, H선임은 알아주는 자동차 마니아였다. 6만 명이 넘는 대기업. 와인 하면 C차장이었고, 운전하면 H선임이었던 것이다.
일 안에서도 좋고, 일 밖에서도 좋다.
이것만큼은 아무게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와요. 나도 그 아무게가 되어 있는가?
나만의 주특기를 가지고 있는가?
누구나 애정과 열정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애정과 열정이 열심을 낳아, 열심이 특심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개발하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주특기를 찾아내어 길러보자.
다음날 아침. C차장을 만났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직 입 안에 와인 향이 남아 있다고 흥이 남아있다. 나는 잘 모르겠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