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
새벽 교대 시간. 메딕이 전달사항을 가지고 들어왔다. 메딕이 전달하는 사항은 통상 좋은 소식이 아니어서 걱정이 앞섰다. 작업자가 부상을 당했다거나, 누가 아프거나 하는 소식이 아니길 바랬다. 위생 관련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거나, 배에서 진행하는 빙고, 로또 등 이벤트도 보통 메딕이 주관하니 항상 나쁜 소식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작업자 중 한 명이 수두에 걸렸다.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작업자는 최소 5일간 격리될 예정이고, 위생 관련 지침은 최고 단계로 격상되었다. 수두는 아이들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다 큰 어른도 걸린다니 의아했다. 옆에 있는 이탈리아 신참 레오도 작년에 수두를 크게 앓아 죽을 뻔했다며 자기는 이제 안전하다고 큰소리친다. 나도 어렸을 때 수두를 앓았나? 다급히 궁금해져 아버지에게 전화해 평소 여쭙는 안부와는 달리 어릴 적 수두에 걸린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시며, 옆에 계신 고모님은 사촌 누나와 동생이 어릴 때 수두를 심하게 앓아 업고 응급실로 뛰셨다는 기억으로 아버지 기억을 거드셨다. 수두를 그렇게 심하게 앓는 가족 내력이 있다면, 아버지가 기억 못 하시는 걸로 보아 나는 걸린 적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배에서 수두 전염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코비드 시절. 세상이 통째로 바뀔 것 같았지만, 지금은 많이 잊혀진 그 시절. 영국 오프쇼어 현장에 나가는 프로젝트었다. 바다에 나가려면 챙겨야 할 증명서들이 많은데, 여기에 코비드 테스트 관련 증명서 한 두 개를 더 챙겨야 하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영국에 도착하니 가관이었다. 공항 옆 호텔에서 하루동안 격리되고, 항구에 마련된 숙소에서 또 하루를 머물면서 그놈의 콧구멍을 여간 쑤셔대는 게 아니었다. 배에 올라서도 코비드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작업을 할 수 있었고, 3일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잠복기가 지나야 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제한된 공간은 바이러스가 퍼지기 가장 쉬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잠복기가 지나고 모두가 바이러스러부터 안전한 것이 확인되면,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배 안이야 말고 가장 안전한 곳이 되었다.
수두 환자가 확정된 지 3일이 지났다. 다행히 전염자는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지만, 환자는 여전히 격리 중이라고 전해졌다. 심했던 고열과 온몸으로 번졌던 수두발진은 일부 진정된 듯하지만, 여전히 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성경에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동방에 최고 부호였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욥을 시험하고 싶은 사단은 욥이 가진 모든 재산과 가족을 빼앗아 버리기로 작정한다. 심지어 욥의 몸을 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통 악창이 나게 해 버린다. 심한 고통 중에서도 욥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결국 시험에서 승리해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된다. 야고보는 이런 욥을 인내의 대명사로 기록하고 있다. 견디기 힘든 악창이 온몸에 퍼졌을 때 욥은 조각난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어 피와 골음이 흘러나올 정도로 가려움증이 심했다고 한다.
한 배에 타고 일하던 작업자가 독방에 격리되어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루빨리 회복되어 작업장으로 복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