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실
깊은 바닷속에 해저 구조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은 엔지니어링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구조, 지반, 해양, 석유, 화공, 통신, 선박, 항해, 리깅 rigging, 기계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을 집약해 하나의 구조물의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각종 AI 기술과 무선 통신 기술이 접목되어 해저 320미터 깊이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구조물을 설치하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허용 오차 기준은 0.3도. 250톤이 넘는 구조물을 0.3도 오차 안으로 설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0.001도의 정확도를 가진 디지쿼드로 깊이, 롤링, 피칭을 측량하고, 0.1도 정확도를 가진 자이로를 이용해 해딩을 컨트롤한다. 이 모든 데이터는 DMS라는 퀴브에 저장되는 동시에 바다 위 사무실로 실시간 전송된다. 400톤 크레인이 구조물 안전하게 매달아 주고, 두 대의 ROV 로봇이 구조물 주위를 항시 순찰하며 모니터링하며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한다. 구조물이 해저면에 터치다운하면 석션앵커팀이 투입된다. 조심스럽게 언더프레셔를 조절하며 구조물을 해저 깊이 서서히 관입시킨다. 이것이 내가 맡은 일이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거대한 구조물을 배에서 들어 올려 바다로 넘기는 오버보드 작업. 다음으로 구조물이 해저 바닥 닿는 터지 다운 순간이다. 이 순간에는 관련 모든 엔지니어들은 모니터실에서 숨을 죽인다.
먼저 오버보드의 순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전성을 검토했고, 항구에서 예행연습을 두 차례 마치고 현장이 나왔다. 연습했던 것처럼 전 과정이 매끈하게 진행됐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구조물은 서서히 320미터 해저 바닥으로 내려갔고 있었다.
이제 터치다운을 준비한다. 해저면 바로 위 2미터에서 스탠바이를 하고 모든 센서의 상태를 점검한다. 이 순간, 앗! 갑자기 통신 장비의 연결이 두절되었다. 센서는 살아 있있었지만 데이터를 전송하는 모뎀에 문제가 있는 듯싶었다. 잠시 후 살아있던 센서도 모두 망실이 되어 버렸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예비센서가 있기에 예비 센서를 작동시켜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조물 상태를 보여주는 최신 모니터링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고도의 정밀도를 가진 센서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AI툴도 320미터 바다 수심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잠들어 버린 것이다.
이제 오직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두대의 ROV로 전해지는 영상과 구조물 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아날로그 원형수평계, 그리고 엔지니어의 경험뿐이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천천히 구조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모니터링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다. 오직 원형 수평계 안에서 헤엄치는 작은 공기방울에 의지하며, 수 계산으로 구조물의 예상 기울기를 계산하고, 남은 관입 심도를 결정해야 했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아날로그 세계로 돌아가 깊고 어두운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20시간이 넘게 걸려, 안전하게 구조물 설치를 무사히 마쳤다. 최종 계측 결과 오차는 0.22도. 오차 범위 안에 성공이었다.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해 버릴 듯 한 세상. Chatgpt가 모든 질문에 답을 줄 듯 한 세상. 미래에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살아 남을지를 예측할 수 없는 세상. 그러나 오늘 이곳 바다 깊은 곳에서는 초고속 광통신 인터넷도, 최신 전자 장비도, AI도 소용이 없었다. 엔지니어의 감각과 경험과 그리고 지혜가 빛을 발했을 뿐이었다. AI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고 싶다. 설치를 마치고 깊이 내리 쉰 안도의 한숨 뒤에 왠지 모를 짜릿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