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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일기 / 북해바다

무제

by 노르웨이신박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은 대체로 덩치가 크다. 거칠고 험한 바다와 맞서 싸우는 바이킹들이다. 이 덩치들을 상대로 지난번 짐 컴피티션 (체력장)에서 내가 3등을 했다는 나름 뿌듯한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이후로 한쪽 어깨를 잘 못 쓰지만 말이다.

지금 타고 있는 노르만비젼이라는 배는 길이가 150미터가 넘는다. 배가 클수록 짐과 식당이 크다. 짐이 어떤지 궁금해 들려봤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중에 당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으니, 키는 185를 훌쩍 넘어 보이고, 어깨는 비행기 활주로처럼 넓고, 전완근은 여름날 논 바닥 갈아지듯 쫙쫙 결이 나 있는 데다, 하체는 늘씬하고, 속목에는 고급져 보이는 손목시계, 다른 손에는 은팔찌, 머리는 반짝이는 금발, 턱선이 날까롭게 선 잘생긴 젊은 친구가 한 손에 25킬로짜리 덤벨을 양손에 들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완벽한 뒤태에 넋이 나간 나는 궁금해졌다. 저 몸은 타고난 것일까? 운동으로 다져진 것일까? 그가 내가 운동하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이 기구 다 쓰셨나요? 완전 영국 본토 발음이었다.

이후 그 친구가 자주 눈에 띄었다. 회의 때 가끔 보면 과묵하고 말이 없었다. 웃을 때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울뿐 이빨을 드러나고 웃지 않는 절제함을 보였다. 수줍음을 타는 듯싶었지만 외모 덕분인지 그의 존재감은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하루는 식당에서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보게 되었다. 그 체격에 밥은 새 모이 만큼 적게 먹는 걸로 보아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는 듯싶었다. 헐리우드로 진출하려고 계획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관리하나는 끝내주는 친구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팅시간에 그 친구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방금 운동을 마치고 왔는지 머리가 헐크러져 있었지만 정돈한 듯 멋이 났고,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수냄새는 남자의 향수였다. 이 친구 흠잡기 어려운 완벽에 가까운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미팅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큰 파도가 부딪치는 진동과는 다른 주기적인 진동이었다. 책상이 같이 흔들리는 것 같아 의자를 바짝 당겨 몸을 책상 붙여보았으나, 진동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지진과 같은 진동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지진이 날리 없었다. 책상 아래를 보았다. 아. 이런.

이 친구가 덜덜덜 심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긴 다리를 양발로 번갈아 가면서 떨고 있는데 그렇게 경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리는 다리대로 떠어대는 동시에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손톱은 이미 깊게 파여 더 물어뜯을 손톱도 없었으나 더 깊이 파고들면서 악착같아 물어뜯으려는 모습에 구역질이 날 뻔했다.

예전에 한 스님이 낯선 동네 주막에 들렀다고 한다. 한 젊은 친구가 관상이 너무 좋아 보여 주요 관직에 있거나 동네 유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직업을 물었다고 한다. 예상과는 달리 그 젊은 친구는 거름뱅이였다고 한다.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 관상에 백수일리 없다 생각하여 젊은 친구에게 가까이 가보니, 이 친구가 심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스님은 옆에 있던 도낏자루를 집어 들어 젊은 친구의 떨고 있는 다리를 내려찍으려 도끼를 추켜올렸다. 젊은 친구는 놀라 자빠지며 이유를 물었더니,

자네는 훌륭한 관상을 가지고 태어났네. 지금 떨고 있는 다리를 자르고 살아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걸세.

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전히 다리를 덜덜 떨고 손톱을 뜯고 있는 어깨 넓은 친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그렇게 대단한 남자도 없고, 그렇다고 대단히 못난 남자도 없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잘난 여자도 없고 그렇게 못난 여자도 없다.

그저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 남자가, 내 여자가, 최고구나 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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