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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일기 / 북해

덱포맨

by 노르웨이신박

덱포맨 Deck Foreman

새벽 3시 40분. 인터폰이 울렸다. 숙소 침대에서 깜짝 놀라 스프링 튀어 오르듯 전화를 받았다. 4시에 툴박스 미팅이 시작된다는 연락이었다. 기상상태가 좋아져 공정이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4시 미팅에 참석하고 바로 현장으로 나갔다. 현장은 준비가 되었다. 이번에는 340톤짜리 구조물이다. 400톤 크레인도 버거운 무게다. 최대한 다이나믹 하중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시간이 바람과 파도가 가장 낮은 새벽 4시었다..

선장은 브리지에서는 바람과 파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크레인 오퍼레이터는 크레인이 최대 용량 400톤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팅하고 대기한다. 오프쇼어 매니저는 모니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숨죽여 지켜본다. 파티쉽은 무전으로 배, 크레인, 현장과 소통하며 대기한다. 마린 워런티는 작업 안전성을 승인하고 인증서를 발급한다. 클라이언트는 작업 개시를 최종 허가하고 현장을 지켜본다. 덱맨들은 4곳으로 나눠져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명령을 기다린다. 모두 최종 작업 개시 명령을 기다린다. 최종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덱포맨 deckforman이다. 덱포맨은 야전사령관이다.

덱포맨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제 덱크에는 13미터 높이 340톤의 거대 철제 구조물과 덱포맨 둘만 남았다. 5층 높이 아파트 한채 만한 크기의 구조물이 온통 철갑으로 무장을 했다. 그 앞에 파란색 안전모를 쓰고 있는 덱포맨은 무전기만 하나 달랑 들고 이에 맞서고 있다. 덱포맨은 한 없이 작아 보였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블레셋 군대(지금의 팔레스타인)와 이스라엘 군대가 엘라 골짜기에서 서로 정면으로 마주쳤다. 3미터가 넘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투구만 57킬로그램, 창 날 무게만 7킬로가 넘는 무기를 장착했고, 그의 방패는 호위병 한 명이 따로 들어야 할 정도로 무거웠다고 한다. 반면 이세의 아들 다윗은 아버지의 도시락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리앗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다윗은 내가 골리앗을 잡겠노라며 투구와 갑옷을 집어던지고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물매와 지팡이만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서게 된다. 소년 다윗은 한 없이 작아 보였을 것이다.

거대한 구조물 앞에 선 덱포맨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멀리 바다가 달빛에 반짝인다. 모두가 덱포맨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이 순간. 만약 실패한다면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최악의 경우 하중 발란스를 잃은 배는 심하게 흔들릴 수 있고 가장 앞선에 선 덱포맨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덱포맨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덱포맨은 현장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가슴에 걸려 있는 무전기를 빼들었다. 스타트 오더를 내렸다. 크레인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크레인 오퍼레이터가 400톤 크레인으로 육중한 구조물을 서서히 들어 올리자 쿠궁쿵 하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구조물이 자리를 잡으면서 내는 소리다. 서서히 바닥에 틈이 보이며 공중으로 올려진 구조물은 서서히 180도를 회전하며 바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천천히 천천히 구조물을 내렸다. 구조물은 조금씩 조금씩 바닷속으로 내려가면서 차츰 몸을 감추며 사라졌다. 성공이다. 텍포맨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에 끝까지 무전기를 놓지 않고 있었다. 그가 믿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쓰고 있는 안전모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지켜준 것은 뒤에서 대기하면서 지원해 준 많은 동료들이었을 것이다.

골리앗과 맞선 다윗은 외쳤다. 나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나를 골리앗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이다. 그리곤 골리앗에게 달려가 주머니에서 다섯 개 돌 중 한 개를 꺼내 물매에 달았다. 물매를 힘차게 돌려 골리앗에게 향해 쏘아 올렸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그 거대한 몸집이 쓰러지고 만다. 다윗은 얼른 달려가 골리앗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버린다. 다윗의 승리다. 다윗이 믿고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의 주머니 속에 남은 네 개의 돌이었을까? 그가 믿고 있던 것은 그를 뒤에서 지켜주실 것이라 믿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덱포맨과 다윗.

거대함과 맞서 싸워 승리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승리하게 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 자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뒤에서 지켜보며 믿고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었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거인을 상대로 맞서 싸우고 있는 가장이라 불리는 사람들. 세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거인 같은 크고 높은 상대다. 그 거대함과 맞서 싸우기 위해 오늘도 전장으로 나간다. 그들이 승리하기 위해 믿는 것은 그들이 쓰고 있는 안전모도 주머니 속에 남은 차돌도 아닐 테다.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지켜봐 주고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모든 가장들의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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