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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일기 / 북해 - 마지막 편

임무교대

by 노르웨이신박


바다에 한번 나가면 보통 2주마다 임무교대를 한다. 2주가 지나면 육체적 피곤과 정신적 피로가 슬슬 몰려오기 시작한다. 기상 악화 등 현장 상황에 따라 2주가 넘어가게 되면 특별 현장 수당이 추가로 지급되는데 이는 누적된 피로와 현장의 위험성에 비하면 작은 보상일 테다.

이제 2주가 넘어 임무 교대 시간이 되었다. 계획했던 4개의 구조물을 모두 완공하진 못했지만, 그중 3개의 구조물 설치를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마지막 한 개의 구조물을 남겨 놓고, 네덜란드 친구 에티엔에게 바통을 넘기기로 했다.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반가움에 비할 바 아니었다. 이제 임무교대를 위해 배는 항구로 기수를 돌렸다.

큰 배가 항구에 정박하려면 파일럿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도선사가 타고 있는 파일럿이 도착하지 않으면 배를 항구에 정박할 수 없다. 도선가가 조금이라도 일찍 와주면 그만큼 항구 주변에서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고, 기름도 절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집에 가는 비행기 표를 한편이라도 앞 당겨 예약할 수 있다. 도선사를 재시간에 와주길 기다렸다.

다행히도 도선사가 재시간에 맞춰 도착해 주었다. 배를 항구에 정박시키고 갱웨이를 내려 출입구를 확보했다. 이제 짐을 챙겨 배에서 내려 집으로 가려는데, 이런… 항구에 서 있어야 할. 나와 교체해 배를 타고 나가야 할 에티엔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에티엔은 도착하지 않았다.

중고생 시절. 해마다 겨울이면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를 했다. 우리 교회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고속버스터미널이었다. 2시간씩 교대로 자선냄비 종을 딸랑딸랑 흔들며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를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요즘은 주변 상인들을 방해할 수 있으니 확성기 없이 종만 작게 흔든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추뼛대다가도 발걸음을 멈춰 자선냄비에 따듯하게 달구는 손길들을 보면 어느새 긴장했던 마음은 따듯하게 풀리곤 했다. 한 손은 엄마 손에 이끌려, 한 손은 자선냄비를 향하는 어린아이들의 손길은 정답고 따듯했다. 하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냄비에 동전을 넣고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은 천사 같았고, 동전이 냄비에 떨어져 울리는 딸그랑 소리는 종소리와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아끼고 아껴 모아놓은 빨간 돼지 저금통을 통째로 냄비 위에 흔쾌히 올려놓고 가는 학생을 보면 감사를 넘어 감동,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12월 중순, 영하의 날씨 속에 야외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2시간을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 경쾌하게 흔들던 종소리는 점점 툰탁히 얼어갔고, 영하의 거친 바람은 두꺼운 두 겹의 양말도 서서히 파고 들어왔다. 조르고 졸라 끌고 나온 친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이제는 교대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2시간을 채우기 전 10분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간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수시로 쳐다보는 시계는 초침이 분침 같았고, 분침이 시침같이 느렸다. 이때 교대시간에 늦어 2시간 5분이 지나도 교대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교대자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2시간 동안 느꼈던 따스한 감사와 감동은 5분 만에 얼어버리고,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교대자를 미워하는 원망의 마음은 고드름처럼 쑥쑥 자라났다. 그런 내 얄팍한 속아지에 더 분이 났다.

어느 해. 유난히도 추운 12월이었다. 이날도 억지로 끌려 나온 친구와 함께 자선냄비 종을 치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교대자가 오기를 기다리며 2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음 교대를 맡으신 집사님이 15분 일찍 도착하신 것이었다. 수고가 많다며 따듯한 인삼차를 보온병에 담아 오셔서 따라 주셨다. 호호 불어 마시는 따듯한 인삼차는 2시간 동안 얼어붙었던 우리들의 온몸을 발끝까지 녹이는 듯 따뜻했고, 그 집사님의 손길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듯 다정했다. 3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집사님의 따듯했던 손길과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에티엔은 아직 항구에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봐도 연결이 안 되니 이제 걱정이 되었다. 에티엔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다. 늦었지만 그저 나타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되면 배는 출발할 것이고 만약에 에티엔이 도착하지 않으면 나는 배에서 2주간 더 머물러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만 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선장이 갱웨이를 거두고 나면 더 이상 사람이 배에 오르거나 내리지 못한다. 이제 곧 출발이다.

출발 직전.

저 멀리 작은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택시는 우리가 정박한 항구로 서둘러 달려왔다. 에티엔이었다. 에티엔은 항구 번호를 잘 못 찾아갔고, 핸드폰은 방전되어 있었다고 미안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에티엔이 밉기는 커녕 출발 전에 나타나준 에티엔이 고마웠다. 나는 급히 싸놓은 짐을 챙겨 배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갱웨이는 철거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자 배는 서서히 항구에서 멀어졌갔다.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에티엔은 테크로 나와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에티엔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멀어져 가는 에티엔의 모습 뒤에 집사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 시간을 드리고 돈을 드린다 해도 사람의 마음을 쉽게 오랫동안 얻기란 쉽지 않다. 집사님은 15분 만에 인삼차 한잔으로 내의 마음을 30년 넘게 사로잡으셨다. 그 따듯한 손길과 마음. 호호 불며 마시던 인삼차 향기가 코끝에 맴도는 듯 아련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에티엔의 안전한 항해와 30년 전 집사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나의 북해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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