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2025.11.21
낙엽
겨울이 오기 전에 미뤘던 마당을 청소를 하기 위해 뒷마당으로 나갔다. 연일 계속되는 굿은 날씨 속에 그칠 줄 모르던 비는 여름 한 철 집 마당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던 두 그루의 사과나무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유난히 크고 빨갛게 열린 사과들. 싱싱하고 푸르렀던 나뭇잎을 무참히 떨어뜨려 버렸다. 까치가 맛보며 찔러만 보았던 사과는 바닥에 떨어져 뒹굴며 물러가고 있었고, 빛바랜 낙엽은 축축이 젖어 겹겹이 쌓여만 갔다. 잔디 깎기 기계로 밀어도 보고, 빗자루로 쓸어도 보지만 숨 죽여 납짝히 엎드린 젖은 낙엽은 쉽게 쓸려나가지 않았다. 억지로 끌게를 사용해 쓸어 담다 보면 새까만 부엽토와 물러 썩은 사과와 젖은 낙엽이 뒤엉커 흙탕물이 되어 내게 튕겨져 돌아왔다.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 끌어 모은 낙엽은 흙 범벅이 되어 질척이고 무겁긴 되게 무거웠다.
흐르는 땀을 식히는데 낙엽에 대한 좋은 추억이 떠올랐다. 풋풋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
내가 속한 팬플룻 동아리에서 가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내기들에게도 역할이 주어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무대장식이었다. 가을 공연에 어울리는 무대를 꾸미기 위해서 붉은 조명을 쏘고, 낙엽으로 무대를 장식하기로 했다.
공연 전날. 대강당에서 늦은 시간까지 리허설이 계속됐다. 리허설이 끝나자 신입생들에게 대형 쓰레기봉투가 하나씩 주어졌다.
자 이제 밖에 나가서 각자 한 봉지씩 낙엽을 모아 온다. 실시!
어린아이들처럼 신이 난 우리들은 대강당에서 백양로로 뛰어 나갔다. 캄캄하고 적막했던 백양로는 우리들의 발소리로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도 없는 백양로를 비추고 있는 붉은 조명아래 빠스락 빠스락 마른 낙엽을 쓸어 담는 소리가 울림이 되어 화음이 되는 듯했다. 가을에 어울리는 소리였다. 여기저기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한 봉지를 가득 채워 임무를 완수한 동기들은 다른 친구들을 도왔다. 마른 낙엽을 가득 채운 봉지는 깃털같이 가벼운웠다. 모아 온 낙엽으로 우리는 대강당 무대를 장식했다. 긴 의자도 하나 놓고, 낙엽을 여기저기 흩뿌렸다. 무대는 근사하게 바꿨다. 다음날 나는 그 공연에 사회를 봤다.
마당 쓰레기봉투에 담긴 무거고 젖은 낙엽을 옮기며 깃털처럼 가벼웠던 낙엽이 생각났다. 다른 낙엽이지만 또한 같은 낙엽이다. 오래전 좋았던 낙엽에 대한 기억으로 오늘 얄궂은 낙엽을 퉁 치기로 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가?
겨우내 까치밥으로 한 두 개의 사과를 남기고 초라하지만 듬직하게 서 있는 두 그루의 사과나무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얄궂은 현실 퉁 치며 살라는 것을 묵묵히 가르쳐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