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생활

증조할아버지

by 노르웨이신박

2024.1.15


/ 증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보다 선명하다.


종종 내가 살았던 안양 박달동으로 오셔서 십 원짜리, 백 원짜리 용돈을 주시곤 하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의 시작은 늘 용돈을 주시던 모습에서 시작되는 것을 부인할 수없다.


입고 계신 새 하얀 삼베 적삼은 늘 빳빳이 풀이 먹여 있었고, 통이 넓은 바지에는 각이 잡혀 있었다. 바지 안쪽에 몇 개의 주머니가 있는지 늘 궁금했다. 나와 형에게 주시는 용돈은 늘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차고 계신 주머니에서 거대한 칼이 나오기도 했다. 칼집에서 서서히 빼낸 칼로 과일을 까주실 때는 그 솜씨를 넉을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허리춤에 차고 계신 주황생 투명한 고름은 어린 내게는 늘 맛보고 싶은 커다란 알사탕이었다. 맛깔난 알사탕을 늘 차고 계셨던 할아버지가 부러웠다.


증조할아버지의 가슴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은 단정하고 정갈한 옷차림과 잘 어울렸다. 그래도 과일을 깎으실 때 행여나 그 수염이 과일에 닿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책상다리로 거실에 앉으실 때 수염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어린 마음에 오실 때마다 주시는 용돈은 군것질에 늘 굶주려 있던 시절 고마움 그 이상이었다. 왠지 그냥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어느 날 증조할아버지가 오셔서 용돈을 주시려던 찰나, 오늘은 제가 먼저 드릴 게 있다고 말하곤 그동안 주셨던 용돈을 안 쓰고 모아 500원짜리 지폐로 바꿔 내가 용돈을 드린 적이 있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극구 사양하시는 증조할아버지 모습이 선명하다. 결국 나는 500원짜리 지폐로 공돈이 생긴 것만 같았다.


어머니께 들은 얘기를 회상해 보면, 증조할아버지는 그 시절 신앙심이 대단하셨다고 한다. 주일 아침이면 새벽부터 목욕 단장을 하시고 먼 길을 걸어 교회에 제일 먼저 도착하셔서, 교회 청소를 마치시곤, 그날 설교 성경구절을 미리 딱 펼쳐 놓으시고 예배를 기다리셨다고 하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증조할아버지의 모범적인 삶과 신앙의 모습을 우리 집안의 근조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증조할아버지는 내 생일과 같은 날 돌아가셨다.


돌아가셨을 때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편안한 호상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내 생일에 친척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생일을 축하해 주러 모인 줄 았았다. 몇 년 동안 내 생일에 증조할아버지를 위한 추도 예배가 드려졌고, 그때마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 좋았다.


증조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내게는 기쁨이 되시는 분이셨다.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작가 박완서 님이 기억하는 생생한 할아버지에 모습에서 나의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사진: 내가 어릴 쩍 살던 안양 박달동. 여긴 아직도 그대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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