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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웨이신박 Oct 16. 2024

선상일기 - 북해

멀미


자정쯤 되었을까. 밤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탕당 소리에 벌떡 놀라 일어났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면서 케비넷 위에 놓여 있는 꽤 무거운 서바이벌슈트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한 박자 쉬더니, 책상 위에 물건들이 한 방향으로 우수수 쓸려 내려갔다. 주섬주섬 안경을 집어 쓰고 일어나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 육중한 스트레스리스 의자가 한쪽 벽으로 밀려가더니 벽에 꽝 부딪치며 멈춰 섰다. 옆 방 또 그 옆방에서도 부딧치고 깨지는 소리가 엇박자로 울려 나왔다.. 창문을 통해 보니 배가 높은 파도를 가르며 현장으로 서둘러 가고 있었다. 큰 너울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이렇게 배는 요동치며 현장으로 가고 있었다.


느낌 중에 멀미처럼 기분 나쁜 것이 또 있으랴. 어디가 딱 꼬집어 아픈 것도 아니고, 스멀스멀 괴물 같은 게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게 사람을 무척 무기력하게 만든다. 멀미가 나기 전에 먹지 않은 멀미약은 이미 소용이 없고, 다 우겨내자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우겨내면 시원할 것 같고, 우겨내자니 나오지 않고 숨어버리는 괴물 같은 느낌이다.  이 느낌이 아주 싫다. 체질적으로 배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출발 전에는 멀미약 한 알을 먹고, 점차 줄여가면서 적응하는 편이다. 배에서는 멀미약을 먹었다고 말하며, 일단 한 수 접고 보기 때문에, 이야기하면 안 된다.  파도가 높을수록, 배가 심히 흔들릴수록, 더 태연한 척할 수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클라이언트로서 지키야 할 위엄이 이깟 멀미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아,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애써 태연한 척을 하기가 정말 힘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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