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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일기 - 북해 겨울 바다 /6/

ROV

by 노르웨이신박

선상일기 /6/


배에는 ROV 룸(무선로봇 조정실)이 있다. 100미터 바다밑을 사람이 들어갈 수 없으니, 수중 항해 로봇을 내려보내고

이것을 조정하는 모니터실이다. 이 로봇을 조정하는 사람이 ROV 오퍼레이터이다.

2명씩 한 조를 이루어 낮, 밤 교대근무를 한다.


이 방은 화려하다.

초대형 모니터 몇 개가 서로 연결되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치 수중로봇을 어디 우주 멀리라도

쏘아 올릴 기세다. 때로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푯말을 내걸고, 비밀스럽게 중요한 일을 하는 척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젊은 노르웨이 남자와 여자가 한조로 일하고 있는데, 남자는 늘 반바지 슬리퍼 차림에 종아리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가지각색의 수채화는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는 듯하고, 여자는 히피 한 헤어스타일에 손톱에 빠알강, 초오록 반짝이는

매니큐어로 10 손가락이 모자란 듯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다. 남자 헤어스타일은 대머리였다. 커다란 모니터들 앞에서 스트레스리스 소파보다도 더 편안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조이스틱만 까딱거리며 마치 게임방에서 게임을 하듯 로봇을 조정하는 일이 전부였다.

의자는 또 얼마나 크고 높은지, 파도가 쳐서 배는 흔들려도, 이 의자에는 heaving compensation (충격 완화장치)이 있어

어지간해서는 크게 흔들리지도 않는 초특급 명당자리라 한번 앉아나 보고 싶었다.

편안히 게임방 의자에 앉아 게임하며 돈을 벌고 있는 것만 같아 부러웠다. 배에서 일하는

다른 엔지니어들에 비하면 이건 완전 땡보직임에 틀림없었다.


저녁 회의시간이었다. ROV 오퍼레이터 둘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항구로 가는 길이니 할 일이 없었다.

회의 중간에 이들이 들어왔다. 나는 이 두 젊은 친구들을 보고, 뒤통수를 한대 세게 맞은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남녀 모두 입고 있는 보일러슈트 (커버롤)는 기름 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끼고 있는 장갑은 물과 기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안전모를 벗는데, 여자의 히피 머리는 떡이 되어 있었고, 남자의 대머리에는 땀이 송송 맺혀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둘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회의에 참석했다. ROV가 운행하지 않을 때는 ROV 기계를 정비하고 온 것이다.


그렇다.

화려하고 편안하게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없다.

그 뒤에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얼마나 즐기며 일할 수 있느냐. 이것이 부러움의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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