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바다
2025.03.22
선상일기 2025 /1/
금요일 23시 50분. OO호가 항구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샘이다.
북해바다 심한 바람을 피해 항구로 피항한 00호는 다음 작업을 위한 크루체인지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미션은 항구에서 200여 킬로 떨어진 바닷속 400미터 깊은 곳에 석션앵커 1기를 설치하고 석션 앵커 2기를 회수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예상되는 짧은 웨더윈도우(작업할 수 있는 기상조건) 기간 동안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프로젝트팀은 석션앵커 시공 경험이 있는 전문가 2명을 요청했고, 나와 레미(프랑스)가 선정되었다.
지난번 채 다 풀지 않은 오프쇼어 가방을 정리하며, 불필요한 짐을 좀 덜어냈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한 겨울에 나갔던 해상 출장에
비해 짐이 봄날처럼 가벼워진 듯했다. 오프쇼어 가방은 라면박스 같은 모양의 검은색 가방으로 안전모, 안전화, 커버롤 등
각종 안전장비들로 채워져 있다. 20킬로가 넘는 오프쇼어 가방을 뒤로 메고, 랩탑과 책이 든 가방을 앞으로 매고 서 있으면,
웬만한 거센 바람에도 끄떡이 없다.
어젯밤.
안방 침대에서 딸아이가 대성통곡을 해댄다.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껌딱지가 되어버린 고딩 딸은, 바다에 나가지 말라고 떼를 쓴다.
눈물 콧물을 쏙 빼며 한참을 울다가,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이 웃으웠는지 또 한참을 웃다가, 코를 팽팽 풀어댄 휴지를 아무 곳으로 날리다가, ,
그렇게 웃고 울며 안방 침대를 점령하더니 다시 아빠 품 사이를 파고든다.
한참을 토닥거리림과 안심 끝에 떨어진 껌딱지 딸은 아쉬운 듯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껌딱지.
언젠가 껌이 스스로 떨어지고 싶어 떨어질 날이 오겠지만, 먼저 떼어 버리고 싶지 않은 껌딱지.
언제나 와서 붙고 싶으면 붙고, 떼어 나가고 싶으면 가거라.
아빠는 언제나 껌딱지가 붙을 수 있는 신발이자, 바닥이자, 벽이자, 천정이자, 집이다.
베르겐으로 가는 하늘 길에서 보는 피오르드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