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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일기/ 북해바다

웃음

by 노르웨이신박

선상일기 25 /3/


북해 해상 공사에는 꽤 많은 엔지니어들과 마린크루들이 작업을 같이 한다. 특별히 노르웨이 해상 유전 프로젝트는 워낙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공식적이진 않지만 몇몇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프로젝트 참여에 배제되기도 한다.

이번 오프쇼어 출장은 베슬랩(배 전체 담당자)으로

배에 오른 것이 아니라 승선자 명단을 받아 볼 수는 없지만, 엔지니어는 대부분 노르웨이 사람이다. 같이 간 레미와 나만 빼고 말이다.

자연스럽게 배에서 사용하는 공용어는 노르웨이어다. 레미는 노르웨이가 능통하다. 나는 눈치라도 능통해야 한다.


매일 아침 데일리 미팅이 대 회의실에서 열린다. 20여 명 각 분야 담당자들이 지난 24시간 동안 진행상황과 앞으로 24시간 동안의 계획을

공유한다. 라운드 테이블을 둘러보니, 어림잡아 절반 이상은 30-40대로 보이고, 대여섯 분 정도는 60대 이상으로 보인다.


그중 해상 포지션을 담당하신다는 60이 훌쩍 넘어 보이는 분이 인상적이다.

산만한 덩치에 더부룩한 턱수염. 반 백발 곱슬머리에 코 끝에는 빠알간 실핏줄이 간헐이 보이고,

높이 솟은 배 불뚝에 뒤뚱거리는 모습이 빨간 모자만 씌워드리면 영락없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다.


그분의 호방한 웃음소리에 회의실 분위기가 녹아내린다.


껄껄 껄껄….


웃음소리가 아주 매력적이다. 내면을 감추지도 않고, 그렇다고 드러내지도 않고, 톤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이미 모든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는 듯한 자신감과 여유가 묻어나는 웃음이면서도,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웃음소리다.


살면서 오랜 기간 만나지 않았어도 내 기억에 이상하리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것은 그들의 웃음소리는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대화하듯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다음은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던 사람이다. 이것은 그냥 시계가 이뻐서이다.)

한 배 안에서 60대와 30대가 같이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60대는 먼저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지 않고 지적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껄껄껄 웃음 가운데 녹아 있는 오랜 경험과 지식을 젊은 30대가 퍼 가는 모습이다. 원하는 만큼 넉넉히 퍼가라고 껄껄껄 열어주는 모습니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배에서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말은 닫고, 웃음을 열어라.

(이건 돈도 들지 않는다.ㅎ)


껄껄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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