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하다
2025.03
배에 장착되어 있는 150톤 크레인 기능에 오류가 생겼다. 석션앵커를 설치하고 회수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크레인이 필요하다.
그 중요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로드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90명을 태운 배는 항구로 향했다. 로드셀을 교체하고 하중재하 테스트를 마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엔지니어링 크루들은 철수하고 테스트가 완료되면 다시 모이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다시 배에 올랐다.
새로운 로드셀을 장착한 크레인이 더욱 건실하고 탄탄해 보인다. 12미터짜리 석션앵커도 온보드(승선)를 마쳤다.
배에 올라 다시 방을 배정받았다. 이번엔 레미가 살짝 부탁을 했다고 하던데.... 독방이다. 레미 방이랑 멀지 감치 떨어져 있다.
레미가 지난번에 내 코골이에 고생을 좀 했었는지 나보다 더 좋아한다.
3평 반 남짓 케빈(방)에 이층 침대 하나 (침대 머리맛엔 작은 손전등 하나), 옷장 하나, 화장실 하나.
그리고 작은 테이블과 소파.
이 공간을 건장한 성인 둘이 쓰다가, 혼자 쓰니 대궐이 따로 없구나.
고된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을 때 편하게 누울 자리가 있고,
고플 때 먹을 밥이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짐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더 필요한 게 무어냐?
이것으로 족하다.
족한 마음을 가지니, 부자가 된 것 같다.
부자가 되는 방법이 이렇게 간단하다니..
오늘 자정 출항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것으로 족하다.
자! 이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