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걸고
이름을 걸고
긴 하루였다. 새벽에 시작한 작업이 자정 넘어까지 끝나지 않았다. 12시간 로테이션 근무라고는 하지만, 현장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두 대의 워킹 로봇이 천천히 작업을 해 나갔다. 380미터 바닷속에서 360도
요리조리 돌아가며 섬세하게 작업하는 로봇 손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로봇 손을 조정하는 오퍼레이터는 조이스틱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몸 시네루까지 써가며 일하는 모습은
진지함을 넘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오퍼레이터들은 그들의 기술과 마음과 정성을 로봇의 손 끝에 전하려는 듯했다..
새벽 1시.
380미터 수심 아래 석션앵커 시공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시공한 앵커에는 요네라는 이름이 세겨져 있었다. 요네는 구조 엔지니어다. 지금 같이 현장에 나와있다.
요네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세겨져 있는 구조물을 현장에 시공하는 마음이 어떠니?
그는 웃었다. 요네 옆에 있는 게이르도 자기 이름이 세겨져 있는 구조물이 노르웨이 최북단 현장에 시공되어
있다고 끼어든다.
내 이름은 언제쯤 세겨줄 거니? 물었더니, 너는 너무 젊어서 오래 기다려야 한단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2006-7년쯤. 인천대교를 시공할 때의 일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200미터가 넘는 주탑의 기초는 당시 국내 최대 직경 3미터 현장타설 말뚝으로 시공되었다.
주탑에는 24개의 말뚝기초가 시공되었고,
접속교 기초를 포함하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1천 개 이상의 기초가 시공되었다. 이 많은 말뚝에
구조, 재료, 지반, 해양 엔니지어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으면 어땠을까?
적어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초 위에 웅장하고 늠름하게 서 있는 인천대교 위를 달릴 때면, 어깨를 으쓱이며 거들 먹이라도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초를 시공할 때면, 적어도 한번 더 들여다 보고,
고민해 보지 않았을까? 내가 하는 일에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이름을 걸고
일하지 않았을까?
내 이름을 걸고.
잠깐 눈을 붙이고 현장으로 나갔다.
어제 시공을 마친 앵커 주변을 측량하는 As left survey 가 진행 중이었다. 요네스의 이름이 남아 있는 앵커 윗부분에 살짝 보였다.
모든 사람들 이름이 구조물에 세겨져 있진 않지만, 어제 배에 타고 있던 68명은 모두 현장에 함께 하고 있었다.
모두 그들의 이름을 걸고 함께 했다.
그들 모두 어깨를 으쓱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2025.4 북해바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