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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일 일상

by 노르웨이신박

2025.4.15


노르웨이에서 부활절은 작은 버전의 크리스마스와도 같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부활절 연휴에 벌써 거리는 한산해진 듯하다.

멀리 가족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겨울 산장에 가서 마지막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고포스케 (God Påske)는 메리크리스마스와 같은 부활절 인사다.


딸아이에게 하루 시간을 내어 가까운 여행이라도 갈까 물었다. 고2가 무슨 여행이냐며 집에 있자고 되려 면박을 받았다.

겨우내 헝클어진 정원. 못 자국이 헐거워진 뒷마당 데크,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빗물받이.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들이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보내기는 아쉬웠는지 딸아이가 친구들 4명을 데리고 와 슬립오버를 하겠다고 제안한다.

친구 중 한 명이 예전에 아빠가 만들어준 김밥이 너무 먹고 싶다니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조른다.


반갑고도 신나는 마음을 살짝 감추며,


아빠 요즘 회사일이 바쁘고…. 김밥은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며 거드름을 피워봤지만,

딸아이는 아빠가 만들어 줄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친구들과의 시간 약속을 잡고 있었다.


자, 어떤 김밥을 만들어 줄까? 이야기하다가, 같이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회사일은 적당히 마무리하고 일찍 퇴근해 재료를 준비했다. 시간 맞춰 아이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밤새 각자 먹을 과자봉지를 하나씩 들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우스웠다. 한 아이는 아애 잠옷보다는 좀

도톰한 수면바지를 입고 왔다. 아이들은 이미 파티가 시작되었다.


김밥을 처음 말아본 아이들은 신이 났고, 오색빛 꽃 같은 재료들이 하얀 밥과 김에 말리는 게 신기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김밥에 자랑스러웠고,

그 맛을 한 아이는... 아.. 천국의 맛이야... 라며 흐느끼며 웃었다.


신나게 먹고 놀라고 우리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10대 아이들.

꽃보다 아름다운 꽃들.

너희들 앞길에 꽃길만 있기를 바랬다. 너희들이 가는 길이 꽃 길이 되길 바랬다.


오늘은 집 밖 뒷마당에도, 집 안에도 꽃들이 가득하다.


고포스케 God På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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