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2025.4.17
텃밭
농사라곤 1도 모르는 서울촌놈이 텃밭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판을 크게 벌렸다. 첫해 반짝해 보곤 삼 사 년째 묶여 놓고 있는 텃밭.
시작은 야심 찼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마당 한 귀퉁이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번식력 좋은 참나물과 메두사 머리를 닮은 민들레는 텃밭의 주인이 되어버렸고, 이름 모를 잡초들과 야생화들이 그 위를 점령해 버렸다.
얽기 설기 뻗쳐 있는 참나물 뿌리는 깊고 단단하게 자리 잡아 그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비가 부스부스 내리는 흐린 오늘.
마음을 먹고 삼지창과 곰돌이 모종삽을 치켜들었다. 굵고 깊이 박혀 있는 민들레 뿌리와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참나물을 적군 삼아
포세이돈이라도 된 듯 마구마구 텃밭을 쑤셔대기 시작했다. 각종 잡뿌리를 제거하니 보슬보슬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숨통이 트인 듯 흙이 막혔던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참나물과 민들레로 점령당한 텃밭에서 삼 년 내내 고고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아군이 있었으니.
그는 대파였다. 누가 돌보지도 봐주지도 않는데 매년 꼳꼳이 고개를 드는 대파는 올해도 초보 농사꾼인 나를 비웃는 듯 겨울 동안 얼었던 땅을
뚫어 나오고 있었다. 이 대파를 위해서라도 나는 텃밭을 그냥 버려둘 수 없었다.
남은 텃밭을 모두 일궜다.
올해는 깻잎, 상추, 쑥갓, 열무, 알타리, 청경근대, 청경채, 꿀참외를 심어 볼 테다.
심은데로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가 오늘 나에게는 신념이 되었다.
여름에 꿀참외를 먹을 생각에 벌써 달콤한 여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