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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Jan 16. 2023

사랑하고 나서 사랑한 이유를 알았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났어!"라는 그 진부하고도 평범한.

"나 결혼해."


"증거 내놔" 

"스드메의 줄임말은 무엇이게? 드레스 투어는 보통 몇 곳을 가볼까요? 테스트입니다."

"응~ 알겠어~ 그런데 말야 내가 요새~"


아니 TV 보면 여자친구들이 호들갑도 떨어주고 계집애 축하한다야 뭐 이런 말 해주던데, 내 친구들은 왜 이런... 아니 정확히는 내 친구들은 나의 결혼이 왜 그렇게 못 미더운 걸까. 내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어렵게 인정하게 된 친구들의 이어진 질문은 당연히 "왜"였다.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마주하자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게, 어쩌다가..?


평범했다. 명절이면 본가 가서 때때로 시집 언제 갈 거냐는 잔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이제 집에 안 온다고 받아치면 그럼 애 언제 낳을 거냐는 부메랑을 받는 나이였다. 술 한잔 걸치면 노닐 질퍽한 연애 경험담도 있고, 더 이상 내게 연애는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결혼은 멋모르는 20대일 때 할 수 있는 것이고, 이제는 어설프게 많이 알아서 확신을 얻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은 싫다기보단 부담스러운 것이었고, 그렇다고 결혼에 대한 로망은 버리지 않아 연애만 하기는 싫은 밤고구마도 호박고구마도 아닌 그런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그를 만났고, 어떤 특정한 계기나 누구 한쪽의 대담한 프러포즈와 추진도 없었다. 어느 날 우린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청첩장을 받으며 물었던 "왜" 결혼을 하게 된 건지에 대해선 바로 적절한 단어를 끄집어내지 못했었다. 덕분에 그 질문을 받고 나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아니 생각해 봐... 그렇게 미적지근하더니 갑자기 확신을 어디서 얻은 거야..?" 아마 돌이켜 보건대 나는 무의식적으론 그 사람이란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왜냐면 결혼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 이유를 선명하게 되었으니까.


그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그러곤 끄덕인다.


그는 내 말을 단순히 귀여워하지 않는다, 진중하게 귀 기울여 듣는다. 그러곤 끄덕인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부부클리닉 프로그램을 따라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서 양손을 잡고 있는다.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상대에게 하고 싶었던 속내를 말하고, 듣는 사람은 무조건 부처님 표정으로 '그랬구나'라고 대답해야 한다. 변명도, 반박도, 평가도 안된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대해 존중하는  것이다. 이건 웃일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다. 그때 박명수와 정준화의 주한 장면을 보며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방향이다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조금씩 튀었다. 주변보다 보통보다 특이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고, 다름으로부터 오는 불편함과 불평등함은 익숙했다. 직장 내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언급한 속담을 듣고 생각나는 동료를 바로 지목하는 팀 활동이 있었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 야속하게도 전원 일치로 나를 뽑았다. 나 아직 손가락 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스스로도 가끔 독특사고방식을 가진 편임을 알기에, 나는 공감(같은 마음, 같은 감정)까진 바라진 않았다. 그저 이해(받아들임)를 받고 싶었다. 우리 엄마처럼. 더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바랐다. 예전 글에도 밝혔듯이, 깔때기이론을 기조로 세상 누구든 이해 안 될 사람은 없고 기저에 깔린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을 거라는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인 이상 순간적으로 타인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쉽게 입으로 내벧거나 이해하려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그런데 그가 해냈다. 나를 보 '그렇구나'라고 답한다. 조금씩 다른 나를 보고도 끄덕인다. 이런 사람이라 나는 그 앞에서 대부분 내 본모습대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직접 받아보면 '그랬구나'의 태도는 상대를 나락으로 보내지도 천상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것보다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위에서 기다려주고, 천상으로 올라갈 때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 태도는 특히나 기복이 심한 나를 평정에서 기다려 줌으로써 안심시키고, 동시에 함께라는 믿음을 준다. 당연 이 '그랬구나'는 쌍방향 이어야 하고, 그는 이것이 가능한 사람이란 걸 내 몸이 머리보다 먼저 깨달아 나를 안착시킨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너그럽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나를 만나면서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만나면서 자신이 무의식 중에 판단한 누군가에 대해 나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러면서 이해의 시각을 넓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니 그는 앞으로도 또 다른 선진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겠다는 가능성까지 더해졌다. 이만하면 내 기준 합격점을 넘고도 넘친 것이다.




다시 돌아가 친구들의 질문에 내가 할 대답은, '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어.'라는 여느 진부하고도 쉬운 말이었는데 나는 이제야 이 단어를 찾게 됬음에 이마를 쳤다.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더니(?!) 역시 맞았다! 30여 년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르게 성장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전적인 공감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상대를 향한 이해가 선행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기에 나는 드디어 안착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의 이유를 정확히 깨달은 오늘, 올리브 오일을 발라 구웠다는 돌김에 간장계란밥을 싸서 우걱우걱 먹는 신랑을 한참 쳐다보았다. 눈이 동그래져서, 뭐 잘못했냐고 묻는 신랑이 귀엽고 소중다. 나는 이 사람이 아니어도 또 언젠간 시간이 걸려도 결국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또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그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왔기 때문에.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건 그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나 말고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사람을 더욱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신랑의 얼굴을 보며 더욱더 충실할 것임을 돼 내었다. 눈이 동그래진 신랑에게 "귀여워서 쳐다봤어."라고 대답했다. 김가루가 묻은 입가를 배시시 올리며 그는 대답했다,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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