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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Sep 20. 2015

엄마에게

나와 장거리 연애중인 그녀에게


엄마, 어느 덧 나도 매달  한두 번의 주말은 지인의 결혼식에서 보내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 가약을 맺는 그 성스러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그 자리를 있게 해 준 부모님께 이제껏 중에 가장 공손하고 경건하게 인사를 드려요. 신부는 드레스가 불편해서 일까요 화장이 지워질까 걱정되서일까요 달려가 엄마를 힘껏 끌어 안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왠지 모르게 난 결혼식에서 그 순간이 가장 좋아요.


엄마, 우리가 떨어져 산지 벌써 8년이란 시간이 되었다는 게 믿겨요? 내가 점점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 중에서 엄마와의 시간들이 줄어간다는 게 그럴  수밖에 없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게 나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해요. 그런데 신기해요. 내가 할머니가 되면 엄마와 온전히 섞인 순간들이 아주 먼 시절이 될 텐데도 당신과의 사랑은 너무도 강렬해서 절대 잊혀지지 않고 내 평생을 좌우한 전부인 그것이 될 테니까요.


엄마,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있긴 할까요? 오랜만에 집에 가도 엄만 국에서 건더기만 좋아하는 날 알고 내 미역국에만 미역을 잔뜩, 된장국엔 두부찜만큼이나 두부를 잔뜩 넣어주잖아요. 변비 있는 걸 알고 내가 집에 갈 때면 요구르트 한 줄을 사다 내가 찾기 쉽게 냉장고 두 번째 윗칸에 넣어 두기도 하잖아요. 평소엔 비싼 과일은 엄두도 안 내면서 딸기를 좋아하는 날 위해 한 팩에 만원이 넘는 하우스 딸기를 사다 주시죠.  그중에서도 물러 터진 건 놔두고 탱탱하고 윤기 나는 딸기만 꼭지를 떼서 주는 엄마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엄마, 화장품에 왜 괜한 돈 썼냐며 쌜쭉한 척 하면서 요리조리 보며 이거 언제 어떻게 발라야 좋냐며 기뻐하시는걸 보니 엄마도 같은 여자였구나 싶었어요. 선물로 사온 스카프는 별로라더니 내가 메고 온 건 한 번만 메보자며 탐내는 엄만 정말 귀여웠어요. 내가 취직하고 나서 데려간 제주도가 엄마에겐 신혼여행 다음 여행이란 걸 깨달았어요. 내가 혼자  다녀온 여러 여행 사진을 보여달라 하셔도 인스타그램엔 올리면서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VJ특공대를 보며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엄마에게 겨우 제주도 밖에 못 데리고 간 게 신경 쓰여서에요. 자식한텐 너그러우면서 정작 본인은 여자로서 개인으로서 사치 한 번 못부렸고, 엄마라는 타이틀로만 살게 강요받은 당신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다음엔 우리 둘이서 여행갈래요?


엄마, 기억하세요? 제가 처음 서울로 올라가던 날의 기차역이요. 기차표를 검사하는데서 엄마와 헤어지고 난 계단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 맞은편 기차역 플랫폼에 갔어요. 그런데 그 곳에서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보였어요. 나와 헤어지고 쓸쓸하게 혼자 걸어가는 왜소한 엄마의 등이 아직도 생생해요. 엄마도 울었나요? 전 기차에서 내내 큰 곰인형을 엄마 삼아 안고 엉엉 소리 내서 울었어요, 옆에 앉은 아줌마가 괜찮으냐고 물어볼 정도로 요. 숨죽일 수 없을 만큼 엄마의 뒷모습이 내 가슴을 뻥 뚫어버렸거든요. 나처럼 생각 많은 엄만, 화장기 없이 얼굴에 홍조가 그대로 드러나던 갓 스무 살 된 그 촌스럽고도 어린 딸을 홀로 서울로 보내고 집으로 터벅터벅 발을 옮겨가는 내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차라리 아빠나 언니도 출근 안 하고 같이 왔었더라면, 가족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를 봤더라면 난 그렇게까지 가슴이 미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엄마, 차로 다섯 시간 기차로 세 시간 비행기로는 한 시간 걸리는 우리의 거리를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같이 살 땐 엄마에게 화내고 짜증 나던 내가 이젠 항상 애틋한 마음으로만 엄마를 그리니까요. 따뜻한 밥 더 못 먹이고 더 품어주지 못하고 독립시킨 것 같아 미안해하지 마요. 그러기에 좀 더 빨리 엄마를 따라 하면서 훌륭한 어른이 되었고 자랑스러워할 단단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커가고 있잖아요.


엄마, 난 휴가를 내고 집에 가서 쉬지만 엄마는 여전히 일을 하시네요. 퇴근 하고 돌아온 엄마의 발을 주무르다보니 딱딱하고 건조했어요. 자고 있는 당신의 등을 쓸어 내리면 등골이 만져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르막길 끝에 있는 우리 집으로 매일같이 그 무거운 아기인 나를 포대기로 엎고 걷고 또 걸었드랬죠. 엎히고 신나는 나는 점점 뒤로 젖히고 엄마는 그럴수록 더 앞으로 수구린 채로 올라가야만 했던 때, 무거운 나를 위하다 당신의 발은 해지고 등골이 휘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엄마, 등에 엄마와 똑같은 자리에 난 볼록한 점을 엄마와 나의 연결고리라며 언니에게 부러워하길 바라며 자랑했어요. 우리의 끈끈한 사랑의 증거가 엄마의 배에도 있는 거 아세요? TV를 보려 누워있는 엄마의 티셔츠를 올려 배를 한참이나 들여다 본 적이 있어요. 나를 임신했을 때 생긴 엄마의 아랫배에 그려진 튼살들은 천장의 전등 빛을 받으면 다른 살들보다 은빛으로 반짝여요! 당신과 내가 하나였던 기적을 기억하는 이 상처는 계속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난 그게 너무 좋아요. 정말로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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