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문화를 TV로만 배우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 비교적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매체 속 서양인들을 보고 그들의 의사표현은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내벧는 직설적인 성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다 대학생 때 유럽인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일이다. 로드트립이라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길을 계속 운전해서 달려야 했는데, 아무래도 앞좌석이 뒷좌석보다는 승차감이 좋았다. 그러던 여행 중에 한 마을 구경을 마치고 차를 타려는데 앞자리에 앉고 싶었던 한 친구가 "I can sit here (in the front seat)."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의아했다. 서양인들은 직설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 친구가 "I wanna sit here."이라고 말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want(하고 싶다)를 써서 말하지 않고 can(할 수 있다)를 썼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내 선입견은 틀렸던 걸까..?
친구들에게 그들이 느끼는 서양의 의사표현은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서양은 직설적이라기 보단 차라리 솔직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편이 아닐까라는 대답도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본인 경험을 들려주며 서양의 모두가 동등한 열린 대화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말했다. 한 번은 그가 여러 나라의 회사 사람들이 모이는 회의에 간 적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여러 나라 중에서도 특히 미국에서 온 팀들은 대체 누가 팀장이고 누가 부하직원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그만큼 소통이 자유롭되 상대에 대한 무시나 비방이 없는 열림(Open)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모두가 동등한 소통이 오갔기에 대화만 가지고선 그들의 직급이나 상하관계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조금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중요하고 남의 실수에 인색한 경향이 없잖아 있으며 상하 관계에 따라 표현이 다른 우리나라에선 모두가 동등선상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곧이 표현한다는 것은 당연 어려운 일이다. 조심스럽게 빙빙 돌려 말하거나 가끔은 의사나 의견을 접아야 할 때도 있다는 건 명백하다. 되돌아 올 비판 섞인 평가나 대우 때문에 혹은 나이, 직위, 권위 등에 따라 가해지는 의사표현의 제약 때문에. 또한 나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이미 우리 언어에 존댓말과 반말이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의사표현에 제약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와 비슷하게 일본어에도 반말, 높임말이 존재하고 심지어 그보다 더 높은 경어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本音(혼네, 본심)와 建前(다테마에, 드러내는 마음)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생각한 바와 다르게 타인에게 의사표현을 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언어가 사고방식이나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어쨋거나 언어의 높낮이는 소통의 높낮이에 제한을 두는건 어느정도 맞다고 본다.
앞자리에 앉고 싶었던 친구가 want를 쓰든 can을 쓰든 말하는 방식은 그저 개인의 차이일 뿐, 어쨌거나 원하는 바를 전했다는 것이 의미있다. 우리나라였다면 의사를 밝히기 전에 눈치보기 바빴을 수도 있고, 앞자리에 누군가 앉고 싶다고 하면 속으론 이기적이라고 핀잔을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들었기 때문이다. 보다도 친구가 겪은 미국 팀 사람들의 직급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는 열린 대화가 더 와 닿았다. 회사생활이란 것을 해보니 가부장적인 집안처럼 부하직원의 말은 일단 무시하고 시작하거나 아예 듣지도 않기 때문에 의사표현의 장이 막히거나 그냥 포기하게 돼버리는 경우를 빈번히 겪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비교적 열린 의사소통을 직설적이라 오해하지 말아야겠다. 어떤 표현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비교적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전하고 들어주는 그들의 열린 의사표현 방식에 더 끌리는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