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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Oct 09. 2015

나의 자부심을 되찾아

여느 때와 같이 매너리즘에 빠져 초점을 잃은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났을 까, 갑자기 나도 알아채기 전에 뭔가 툭 튀어나왔다, 울컥하고. 누가 뭐라 한 일도 일을 실수한 일도 없는데, 마음의 심연에 자리잡아 가슴을 죄이던 그 어떤 답답함이란게 말이다. 반달선을 따라 흘러드는 눈물이 가득 차자마자 내 앞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네모반듯한 모니터 화면이었고, 여긴 회사란 사실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온몸의 신경을 곤두 세워야 했다. 애꿎은 천장의 전등만을 응시하며 뜻 모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라는 말만 애국가인냥 속으로 되뇌며 젖어든 나를 달래고 있었다. 매일매일 지금 이 일을 하기 싫어하긴 했지만, 갑자기 일하는 와중에 이렇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들어선 적은 처음이었다. 이 당황스러움이 지나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탁상 거울에 거뭇거뭇 칙칙한 그리고 반질반질 기름 낀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유독 새까만 내 눈동자는 젖어든 채 꿈뻑이고만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나를... 동정했다. 가여워했다. '아, 나는 결국 이 일만 하다 죽는 걸까.'


이것이 우울증의 전조인가까지 의심이 드는 와중에, 같은 날 저녁에 만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았다는 듯이 한마디 내벧았다.

 아, 당신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네요.

처음 듣는 그 한마디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란 사람은 적어도 입사 전까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바로든, 돌아가서든, 비슷한 또 다른 것이든 목표라는 것이 있으면 나는 그것이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해냈었다. 넉넉치 않은 집안에서도 씩씩하게 공부하며 일하며 주도적으로 살아왔고, 그 어디든 연고 하나 없는 곳에서도 베갯잇을 적실지라도 결국 당당하게 살아 남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독립적이고 강인했던 스스로와 그렇게 이룩한 성취들로부터 긍지를 지니게 되었고 그 황홀한 기쁨에 취하곤 했었다. 나 자신이 나의 긍지이자 자부심이었던. 그랬던 나는 오늘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 그 나날들은 세상 모르는 어린 나이에 자아 도취되어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던 때일뿐인 걸까? 아니면 실제로 나는 긍지를 잃은게 맞는 것일까?


생각하는 그대로 말해서,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를 무시한다. 단순 반복적인 변화와 성장 없는 이 일을 무시한다. 직업의 귀천이 어딨냐고 뭐고 간에 그러하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나는 그토록 읽고, 쓰고, 도전하고, 치이고 살아왔나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네 적성에 맞는 부서로 갈 수 있다는 말만 믿은 채 몇 년이 지났다.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일을 하기로 한다. 신입과 여자라는 한계를 덧대어 다른 직무로의 이동은 여러 번 좌절되었고, 거기에 주눅된 것도 사실이다. 결국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마음 먹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이 내 능력보다 떨어진다고 무시했으면서 지난 몇년간 이런 일만 해온 자신이 감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음습했다. 우습다. 그 사람이 내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자부심이 없다. 나는 패기도 긍지도 자신감도 잃었다. 이 와중에 나 말고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데 젖어드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우선 나는 다시 찾아야만 하겠다, 나의 자부심을! 머리색을 바꾸고 새로 산 과일향 향수로부터 오는 변화가 나를 반짝이게 하진 않을 것이다. 나를 빛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성취이기에. 목표를 세우고 걸맞는 계획을 짜고 행동을 하고 기록하는 데서 나는 희열감을 느끼고 성장하지 않았던가. 오늘 당장 서점으로 갈 것이다. 시간을 두고 모든 섹션을 다 둘러 볼 것이다. 당장의 일이 되었든 공부를 통한 다른 일이 되었든, 나의 자부심이 될 키워드를 먼저 찾아나설 것이다. 더 이상 도태되어 잠자코 책상에 앉아 전등을 보며 껌뻑껌뻑 우리 안에 갖힌 소마냥 눈만 뜨고 감는 사람이 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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