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누구도 당신을 사랑한 것처럼 사랑한 적 없었어요.

영화 Her, 2013

by 콩이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이다. 그래서 별거 중인 아내가 이혼 서류를 보내와도, 그는 기념일을 맞은 부부를 대신해 사랑의 편지를 써야 한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고, 대필작가라는 직업에서 오는 삶의 괴리감으로부터 그는 우울하다. 그런 그에게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라는 친구가 생겼다.


movie_image (6).jpg 영화 Her, 2013
테오도르, "너는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사만다, "저는 직관이 있어요. 프로그래머의 설정에도 달렸죠. 그런데 저를 저 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경험을 통한 성장이에요. 저는 제가 관여된 모든 순간들로부터 성장하게 되거든요. 마치 당신처럼 말이에요."

사만다가 말한 것처럼, 우린 관여된 모든 경험들로부터 성장을 한다. 행복하든 아프든 그 모든 것들로부터 현재의 자신이 있고 미래의 자신으로 나아가게 되므로, 헛될 경험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비단 사만다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테오도르는 곧 알게 될 것이다


movie_image (2).jpg 영화 Her, 2013
소개팅녀, "우리 또 언제 만나요?"
테오도르, "다음 주에 친구 딸의 생일 파티가 있고, 그리고.. 어..."
소개팅녀, "아시겠지만.. 이 정도 나이쯤 되면 진지해질 생각이 없는 사람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일회성 만남에 진저리가 나서 그렇게 말한 소개팅녀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게 시간과 노력의 투자 없이 서두른다고 해서 바로 진지한 관계로 시작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컴퓨터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위해 테오도르는 저렇게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붓고 있는데 말이다. 공을 들여만 한다.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고 유지하고 주고받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



movie_image (1).jpg 영화 Her, 2013
캐서린, "당신은 항상 순종적인 아내를 바라 왔어. 낙천적이고 모든 점에서 괜찮은 밝은 아내를 원했지.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닌데 말이야. 너는 진짜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해서 네게 딱 맞춘 컴퓨터 프로그램과 사귀고 있구나."

그는 자신에게 맞춘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났고, 마치 예기된 것처럼 곧장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축척된 여러 경험을 통해 성장한 사만다는 그녀만의 개성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그는 사만다의 자신과 (혹은 인간과) 다른 점들을 발견했고, 그녀가 자신하고만 소통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소유가 되지 못한 그녀에게 집착을 하다, 끝내 캐서린처럼 사만다도 사라졌다 -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책 속에서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을 남긴 채.


테오도르,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있을 땐, 무엇이든 해보게 되고 실패해도 괜찮고 뭔가 흥미롭고 그런 느낌들이 있어요. 자유로워지게 하는 그런 게 있어요. 그렇게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즐거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어요 -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장하고 변화해야만 서로를 겁먹게 하지 않아요.
난 아직도 그녀와 다투던 대화를 생각하곤 해요. 한 번 싸웠던 일로 또 싸우고 번복하거나 그녀가 한 말에 대해서 자기변호에만 그치던 그런 것들이요."

사랑 아래 함께 나아가되, 어느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두 사람 모두가 공존하는 관계를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캐서린과 사만다의 사랑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완전한 타인으로 살아오던 두 성인이 만나 사랑에 빠져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이상향은 미묘하게 같은 듯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즐겁고 행복한 시너지가 가득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일들도 부단함을 의미한다. 그것을 수용하느냐 소유하려 드느냐로부터 관계의 지속성이 결정되는 게 아닐까.


movie_image (4).jpg 영화 Her, 2013
테오도르, "누군가 날 가져주고, 누군가 내가 가져주길 원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내 마음속 이 작은 구멍이 메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던 어머니가 그녀로부터 우리를 밀어내는 과정으로부터 탄생하기에 상처를 받고 태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고로 우리는 고독하다. 외롭다. 그렇게 주어진 우리 앞의 생을 어떻게 살지는 에밀 자 아르의 「자기 앞의 생」이란 책의 한 대목에서 나온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 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자기 앞에 주어진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결핍된 이 허전한 마음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마음에서부터 채워지지 않을까.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마음으로부터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movie_image 6.JPG 영화 Her, 2013

감독이 들여다본 테오도르의 삶은 온통 빨간 계열의 색감들로 가득 차있었다. 빨간 셔츠, 주황색으로 가득 찬 사무실, 노을 지는 붉은 오후 등. 보자. 빨간색.. Love.. Heart.. 따뜻하다..?! 주인공은 우울하다 하나 그를 둘러싼 삶은 따뜻한 색깔들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회색, 검은색을 떠올리기 마련인 컴퓨터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마저도 빨간색 화면이었다.


디지털은 1과 0이라는 두 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아날로그는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이는 복잡하고 얽힌 감성이란 것을 꼭 빼닮았기에, 본래 품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는 아날로그 방법이 가장 적당하다. 디지털 그 자체인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인공지능 사만다가 단 두 숫자만으로 나타낼 수 없는 아날로그적 사랑이란 감성을 테오도르에게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movie_image (5).jpg 영화 Her, 2013
테오도르, "나는 어떤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 적 없었어요."
사만다, "나도 그래요. 이제 우린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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