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가 좋아하는 '전체관람가'라는 jtbc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전체관람가'는 여러 감독이 나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모두'가 볼 수 있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프로그램입니다.
영화감독과 수많은 스텝들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노고와 그 창작 과정을 과감 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이명세' 감독의 차례였습니다.
깊은 주름과 수염을 가진 노감독의 '액션!' 소리, 그리고 촬영된 장면을 바라보는 눈길, 그 자체가 하나의 신성한 영화 같았습니다.
이명세 감독 덕에 저는 '영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쉽게 말하자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영상으로 나타내는 것.
작가의 상상과 의미가 무엇이고, 그 상상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은 음악, 미술, 무용 등 많은 예술들이 목적하는 바 일 것입니다.
이명세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예술적 장치를 거쳐 영화 속에 표현했습니다.
영화는 어려웠습니다.
영화는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미학적인 감동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미술관에 가서 단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는 '무제'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곤 합니다.
그 작품이 말하는 바가 무엇이든,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천차만별이니까요.
파란색만 가득한 캔버스가 누군가를 울릴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 부모님은 지나간 유행가를 듣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왜 우시느냐 물어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
저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담아내든, 어떤 방법으로든, 감독이, 작가가, 표현하려는 바에 충실하다면 누구에게나 감동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흥을 받을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예술은 늘 예상할 수 없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해석의 감동의 가능성, 그것이 예술의 재미라 생각도 듭니다.
직설적이고, 뚜렷한 주제를 가진 영화도 좋습니다.
이해하기 편하며,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도 좋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극장 밖에서 고민하게 하는 영화를 더욱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습니다.
많은 감독들이 재미나고, 엉뚱하고, 기묘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은 좁습니다.
커다란 자본이 선호하는 취향에 맞추어진 영화 시간표.
그 속에서 우리의 선택도 그들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쓸쓸한 날, 계획 없이 영화관에 갔을 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참으로 다양하다면.
그것이 개인의 취향과 그에 따른 선택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창작 의도와 창작 방법을 가진 감독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
영화에 대해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 더 재밌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