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을 걷다가
수목원을 걸었다.
내가 주로 찾는 근처 수목원은 나이가 들어 생을 다하거나, 자연재해로 쓰러진 나무들을 (통행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고 있다. 숲 해설가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나무들은 뿌리가 뽑혀, 생명은 다 해도, 그 자리에 남아 다른 생명들의 새 삶터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의 생을 다한 몸에서는 버섯과 같은 균류들이 자라기도 하고, 쓰러진 나무에 난 구멍들은 작은 동물들의 쉼터가 되기 때문이다. 죽은 생명이 살아가는 생명을 돕고 있다. 이 수목원뿐만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잘 닫지 않는 숲에서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 생명들과 살아가는 생명들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다.
사람의 삶과 숲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자라나던 나무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이 또 우리를 살게 한다. 그들이 떠나도,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추억이 양분이 되어, 다시 하루를 살게 한다.
껍질이 벗겨지기도 하고, 겨울 동안 가지들이 떨어져 나가도 봄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우리도 생의 순간에 마주한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견디고, 성장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 식물들은 사람과 친하다. 심지어 말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어쩌면, 옛사람들도 우리와 닮은 자연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제 수목원을 걷다 만난, 껍질이 벗겨진 나무에게 잘 이겨내 보자며, 말을 걸고, 옆에 서 있어주고 싶었던 나처럼.
오늘은 유독 시인들이 부러워진다. 많지 않은 단어들로 마음을 설명하는 시인들이 부럽다. 마음의 덩어리를 툭하고, 시처럼 표현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으니, 주저리주저리 마음을 펴서 보여주는 오늘.
오늘은 글 쓰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