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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Feb 03. 2021

이지안과 장그래

 박동훈과 오상식

 한 달 동안 김원석 감독의 두 드라마, 미생(2016년작)과 나의 아저씨(2018년작)를 보았다.


 한 작가가 쓴 책을 모두 찾아 읽고 나면,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김원석 감독이 연달아 연출한 드라마 미생과 나의 아저씨, 두 편을 모두 보고 나니, 김원석 감독이 드라마로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보인다.



 미생과 나의 아저씨는 두 드라마는 많이 닮아있다.


1.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리고 좋은 어른들



출처: 미생, 나의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


 미생의 장그래와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보자. 장그래는 바둑으로 유년기를 모두 보내고, 원인터내셔널에서 사회생활을 처음 겪는다. 이지안은 빚더미를 안기고 떠난 엄마로 인해, 온갖 고생을 하다가, 삼안 E&C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시작이 무엇이든, 장그래와 이지안은 각자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으로 회사에서 살아나간다. 삶에서 바둑을 빼고 나니, 자신을 표현할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한 장그래는 '노력'으로 회사 생활을 한다. 날카롭고, 아팠던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지안은 '방어'와 '단절'로 회사 생활을 한다. 그들은 모나기도 하고, 그들 위에 덮여있던 모래를 흩어내지 못한 원석들이다.


 자, 이제 원석을 만나는 '좋은 어른'들이다. 미생의 오상식과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 오상식은 처음에는 일명 '낙하산'으로 불리는 장그래를 밀어내지만, 후에 장그래의 '노력'과 '능력'만을 보는 귀한 눈을 가진 어른이다.  그는 장그래의 과거는 묻지 않는다. 장그래가 지금, 애쓰고 있는 상황만 보고, 장그래를 돕기도 하고 혼내기도 한다. 앞에서는 툴툴거리는 상사일지라도, 늘 뒤에서 조용히 장그래를 지켜보며 그를 지지한다. 회사 안에서 오상식은 어떤가. 위험할지라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같은 부서 내 부하직원들에게 넉넉한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박동훈은 오상식과는 조금 다르게 이지안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준다. 이지안에게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장그래의 과거를 묻지 않던 오상식과는 다르게 박동훈은 이지안의 과거를 알게 되고, 감싸준다. 할머니 외에 의지할 곳이 없오들 오들 떨며 지내던 이지안 박동훈은 드라마 16화 내내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할머니를 어떻게 도울지, 지안이 들킬까 봐 두려워하던 과거를 어떻게 치유해나갈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가르쳐준다. 세상에 믿을 어른 단 하나 없다고, 발톱 세우고, 떨고 있던 아기 고양이 같은 지안에게 동훈은 '얘야,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있단다. 나와보렴.' 하며, 따뜻한 우유를 내미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박동훈은 어떤가. 으스대지 않고, 꼼수 부리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박동훈이 상무로 승진할 때, 모든 직원들이 함께 소리 지르며 기뻐하던 한 장면으로, 동훈의 회사생활은 요약된다.  


2. 지켜낸다.


 두 드라마는 지켜내는 드라마다. 수용적이고, 어쩌면 희생적으로 보일 수 있는 두 사람을 또 다른 두 사람이 지켜내는 드라마다.


 미생은 오상식이 장그래를 지켜내는 이야기다. 미운 오리 새끼로 회사에서 낙인찍혔지만, 자신의 노력은 '새 빠진 신상'이라며, 최선을 다하는 장그래를 오상식이 지켜내는 이야기다. 그는 장그래를 지키기 위해, 불미스러운 사건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회사를 나오기까지 한다.

 나의 아저씨는 이지안이 박동훈을 고군분투하며 지켜내는 이야기다. 도준영 대표의 사주로 박동훈을 회사에서 쫓아내고자 박동훈을 도청하게 되지만, 도청 과정에서 박동훈의 인간미를 알아버린 이지안은 박동훈을 돕는다. 박동훈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슬며시 단서를 던져주며 그를 도와나간다. 나중에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를 지켜낸다.



  오상식과 이지안은 이렇게 마주한다.


3. 정공법

 

 두 드라마는 정공법으로 세상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다. 꾀부리지 않는다. 오상식은 위험해도 피가 끓는 일을 택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조건 해내고자 한다. (하지만 현명하게 타협하는 순간도 있다.) 장그래는 기다릴 줄 알며, 겸손하다. 그리고 일의 핵심을 꿰뚫어 본다. 낡고, 묵은 관행에서 벗어날 줄 알며, 사건의 중심부를 타격하며, 굵직한 일들을 진행해나간다.

 박동훈 기다릴 줄 알며, 겸손하다. 빈 말할 줄 모르고, 생긴 모습 그대로(조금 억울하게 생겼지만), 투명하게 회사생활을 해나간다. '구조기술사는 구조적 판단만 합니다. 정치적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여러분 되뇌는 박동훈의 직업가치관이 그의 정공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지안 또한, 박동훈의 상무 인터뷰 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주변을 감동시킨다.



4. 결국은 삶.


출처: 미생, 나의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



 미생은 회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장그래가 한석율에게 팔고자 했던 '땀 냄새가 배어있는 슬리퍼'가 곧 미생이다.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 속에서 사람됨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장그래의 성장 이야기다


 나의 아저씨는 '연대' 하며 살아가기에 대한 이야기다. 외롭고, 고독한 삶을 후계동 친구들처럼 타인에게 조금은 기대기도 하고, 팔짱도 끼며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박동훈과 이지안이 서로를 일으켜 세운 것처럼.



5. 문학작품, 영화, 드라마가 마음 깊숙이 다가와서 오랫동안 남아있을 때가 있다. 하늘 위에 붕 떠있는 작품이 아닌, 나와 같은 세상에 살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때이다. 땅에 발 붙이고 서있는 작품들이다. 올 해도 두 드라마처럼,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작품을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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