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11화 - 브루클린 브릿지를 걷다
나에게 누군가가 뉴욕 여행에서 해야 할 것중 꼭 한 가지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어서 건너보라고 할 것이다. 노을 질 때쯤 브루클린에서 건너기 시작해 다리 반대쪽에 도착할 때쯤엔 맨해튼의 야경을 볼 수 있다. 30분 정도 걸리는이 길이야 말로 뉴욕의 진정한 낭만 이었다. 혼자 또는 둘 아니, 여럿이 걸어도 상관없이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브루클린 브릿지는 노을질 때 걷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에서 가장 핫한 동네이자 뉴욕 예술가들이 사랑한다는 윌리엄스버그에 들려보기로 했다. 윌리엄스버그는 젊은 예술가들이 그들이 살던 소호의 집값이 너무 오르자 이주한 동네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을 탈출하자마자 눈앞에 개성 강한 벽화들과 귀여운 상점들이 가득한 동네가 펼쳐졌다. 작고 귀여운 샵과 거리에서 판매하는 액세서리 진열되어있는 낡은 책들 그냥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재미가 가득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파왔고 마침 '피터루거'라는 스테이크가 유명한 집이 근처인 것이 생각났다. 역시 유명한 만큼 웨이팅이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스테이크를 포장해서 근처 공원에 앉아서 우아하게(?) 흡입했다.
오전 내내 걸었지만 스테이크를 먹고 힘이 나서 인지 날씨가 좋아서인지 조금 더 걷고 싶었다. 천천히 쉬며 걸으며 브루클린 브리지 근처 덤보까지 걸으면 어떨까 싶어서 음료수를 구매하며 상점 주인에게 거리를 물었더니 적잖게 당황하며 걸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주인은 아마 철인 삼종경기라도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출발은 산뜻했다 파란 하늘에 여전히 예쁜 벽화들 깨끗한 거리...
그러다 문득 거리가 낯 설게 느껴졌다.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지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골목을 돌아 나타난 스쿨버스를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스쿨버스 가득 온통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된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
우리가 걷고 있던 그 동네는 유대인들만 사는 동네였다. 그러고 보니 모든 집 베란다에 검은색과 흰색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춤추고 있었다. 8월 말 이 더운 날씨에 아이들 조차도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괜스레 어렵기도 했다. 그들도 민소매에 쪼리를 신고 있는 동양커플이 딱히 반갑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또 옐로우 택시에 의존해 그 동네를 벗어났다.
택시를 타고 지나치는 내내 신기한 느낌이었다. 유모차 안의 갓난쟁이들도 같은 옷을 입고 있다니!! 왠지 모르게 겁먹어서 사진 한 장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덤보에 도착했다.
많이 걷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려서 이대로라면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에서 커피를 한잔 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뽀글 머리를 한 흑인 아가씨들 세명이 들어왔다. 낮에 본 검은 옷의 아가씨들과 오버랩되면서 혼자 재미있어하며 웃었다.
커피숍에서 나와 덤보와 맨해튼 브릿지를 보며 조금 더 걷다가 브루클린 브릿지로 향했다.
노랗게 물드는 하늘을 보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다리는 가득 붐볐다.
우리는 처음 보는 다른 커플들과 교대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벤치에 멍하니 앉자 있기도 했으며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맨해튼에 밤이 내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