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이태리 여행 에세이
2화 - 십 년 만의 런던
2005년 친구들과 영국 여행을 한지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 이었다.
십 년 전 그날 타고 있는 비행기가 히드로 공항에 내려서려고 저공 비행을 할 때, 나는 입체 피규어 세상을 보는 거 같았었다. 맑은 하늘 아례 템즈강을 따라 빅벤과 런던아이 런던 브릿지가 차례로 보였고 그림처럼 사이사이 잔디와 나무들이 보였다. 나는 자고 있던 친구를 흔들어 깨우며 흥분해서 내려다보라고 손 짓 했었다. 그 순간부터 내게 런던은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어버렸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수없이 건물을 세우고 부셔대는 우리나라랑 달리 유럽은 수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도시들이 많기 때문에 다시 찾은 런던 역시 내가 이곳에 왔던 게 십 년전 이었다는 게 실 감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런던 브릿지나 빅벤이 달라 질리 없으니.. 내가 기억하는 런던은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2015년 6월의 런던은 10년 전처럼 맑았다.
내가 무리해서 6월에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것도 런던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 하늘 때문이었다.
이 하늘을 함께보고 싶어 이태리에 가기 전에 굳이 런던에 들리고 싶었고 좋아하는 곳을 이야기하며 신랑과 함께 걷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런던에 도착해서는 내가 앞장서서 소개하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도착한 런던 거리는 기억 그대로 익숙한 느낌이여서 이내 잘난 체를 해댔다.
미국 여행에서와는 달리 이번 여행의 숙소는 한인민박을 선택했다. 지난 영국 여행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영국 음식은 너무도 맛이 없다' 였기 때문에 적어도 '조식 한 끼는 밥을 먹자' 라는 생각이 컸다.
영국 숙소는 킹스크로스 역 근처 였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내가 영국에서 선택한 숙소는 아침은 비치된 컵라면 뿐 이었고 독립된 아파트여서 다른 여행객과의 접점도 없었을 뿐더러 주인 얼굴도 보지 못하는 곳이었다.
빠른 시간 내에 숙소를 정하려다 보니 숙소 후보군중에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곳과 실제 선택한 곳이 잘 연결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래도 민박 치고는 꽤 비싼 가격이었고 그래서인지 쾌적하고 편리했으며 자유로웠다. 숙소가 있는 킹스크로스 역은 히드로 공항에서 지하철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였고 런던은 워낙 교통 안내가 편리해서 헤멜 염려도 없었다.
누구나 영국 여행에서 느끼겠지만 '이토록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안내맨트를 들을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ㅋㅋ)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해 숙소에서 짐을 풀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내 예상대로 신랑은 빨간 이 층 버스만 봐도 흥분하며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고, 내가 좋아하는 이 풍경을 같이 좋아해주니 나도 그저 뿌듯했다.
우리는 킹스크로스에서 소호 방향으로 가는 이 층 버스 타고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는 햄리스 장난감 백화점을 구경한후에 맛집으로 유명한 플랫아이언에서 스테이크로 첫 저녁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소호 근처에 다다르니 예상대로 교통 체증이 대단했고, 우리는 몇 정 거장 전에 내려 걷기로 했다. 거리에도 여행객들과 쇼핑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멀리서 빨간 처마가 걸려있는 햄리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햄리스는 자그만치 7층으로 되어 있었고 입구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표시와 그 옆을 지키는 거대한 프레이모빌 근위병이 있었다.
입구부터 가득한 사람들은 아이들만큼이나 어른들도 모두 신이 나 있었다.
장난감을 구경하다 지쳐보기는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것 같다. 7층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지쳐 플레이모빌 근위병을 손에 들고 서둘러 거리로 나왔다. 스테이크를 먹을 생각에 더 배가 고픈 것 같았다. 플랫아이언으로 가는 길 곳곳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 였던거 같은데 작은 카페 밖에 사람들이 맥주잔이나 와인잔을 들고 자유롭게 술을 마시며 여유롭게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저렇게 기다리는 모습이 편안하고 자유롭지는 않았을 텐데.. 기다리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왠지 부럽기 까지 했다. 나도 기다리게 되더라도 저렇게 여유를 가져야지.. 하고 유치한 각오까지 하며 플랫아이언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준비된 스테이크는 예약으로 꽉 찼고 아무리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 한들 우리 차례까지는 올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소호의 최고 맛집을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 이었다. 배는 너무 고팠고 해가 지면서 닥친 추위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덜덜 떨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연스럽게 코벤트가든까지 걸었고 그곳에서 눈앞에 첫 번째로 보이는 파스타집에 들어섰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맛있지 않은 음식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심지어 그 음식이 어마 어마하게 비쌀 수도 있다는 악몽 같은 현실을 느끼며 런던의 첫 만찬을 마무리 했다.
숙소에 돌아와 다음날 아침으로 준비된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역시 '추위에 떨다가 먹는 컵라면' 이라고 중얼 거리며 신랑에게 엄지를 치켜 세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