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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고 수련 중 입니다(2)

by 이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청소를 통해 수련하고 왔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벌었으니

하루를 좀 더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었던 나에게

청소는 생각보다 좋은 시작이었다.

새벽의 공기는 매순간 상쾌했고,

텅 빈 거리를 걷는 길 위에서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스터디카페에 도착해 청소를 하면서는

헤드셋을 끼고, 밀리의 서제에서 듣고 있는 책을 이어 듣는다.

음악 대신, 잔잔한 문장들이 귀를 타고 들어오고

손은 움직이지만, 머리는 비워진다.

오히려 책 내용에 더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다.

생각을 멈추고,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은 잠시 리셋되는 느낌같다.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다는 것은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감각.

청소를 하면서, 나는 나를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은,

청소와 정리정돈이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주 3일, 이른 아침마다 반복되는 이 리듬은

벅차지 않을 만큼 나를 단단하게 조인다.


이러한 시간은

나에게는 일종의 이른 아침을 여는 수련이다.

그것도 돈을 받고 하는 수련


단순한 일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나를 조율하고, 삶을 다시 ㅅ우는

조용한 에너지가 담겨있다.


아이들의 책상을 닦고 정리하면서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공부는 어렵겠다."

"이 친구도 많이 힘들겠지."

책상 위에 놓인 약봉지를 보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프지 말고, 오늘도 잘 해냈으면.’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는 그들이 앞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들을

갖기 위한 준비작업이다보니,

그 중압감이 크다.

나 역시 거쳐왔고, 또 지금도 하루 하루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러한 마음으로

예쁘게 무릎 담요를 접어서 의자에 걸어주고,

의자를 반듯하게 정리해 놓는다.

책상에 놓인 책들, 작은 쓰레기들

티 나지 않게 살짝 정리 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지 모르는 책상의 주인들에게 보내는

나의 조용한 응원이 된다.


이 일은 1시간에 대한 시급을 받는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누군가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원하고,

마음을 다듬는 작은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청소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조용히 정리해낸다는 것.

생각보다 꽤 단단하고,

생각보다 많이 따뜻한 일이다.


어젯밤 오늘의 아침을 위해 잠자리에 들고,

오늘 아침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긴장하며 시간을 확인한 후,

다행히 늦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느끼고, 일어나

나의 의식을 마치고 왔다.


오늘은

밤을 새운 건지, 아니면 새벽부터 일어난 건지 모를

한 여학생이 스터디카페에 나와 있었다.

평소처럼 아무도 없는 공간을 청소할 거라 생각했는데,

서로의 존재가 다소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공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서로가 묵묵하게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아침 6시...

여학생은 공부를 하고,

나는 청소를 했다.

넓은 스터디카페에서

혼자 공부하던 아이는

나를 보자 순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애써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괜찮아, 신경 쓰지 마”

하는 마음의 메시지를 조용히 건넸다.

그리고 다시,

나의 일에 집중했다.


아침을 청소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조용히 정리해낸다는 것.

생각보다 꽤 단단하고,

생각보다 많이 따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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