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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흐릿할 때, 글씨는 나를 붙잡아 준다.

by 이을

오늘은 마음이 조금 흐릿했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그럴 땐 습관처럼 종이를 꺼낸다.

이유를 붙이지 않고 잘 써야겠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그저 펜을 들어 '오늘'이라는 글자를 써본다.


'오늘'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써내려 가다 보면,

불안도, 초조함도 아주 조금씩 자리를 잡는 느낌이 든다.

글씨는 잘 써보려 하면 더 틀어지고,
힘을 빼면 또 너무 약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그 흐트러짐조차 지금의 나를 닮아 있는 것 같아
괜찮다고, 그냥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해 본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감정을 담는 손글씨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니까.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감정’이라는 건 참 말로 하긴 어려운 부분이 많다.
설명하자니 복잡하고, 그렇다고 꼭 표현해야만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손으로 써보면, 그 말 못 할 감정이 한 글자, 한 단어에 실려

조금은 정리되고, 조금은 풀려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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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그런 경험들을 조금씩 나누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감정을 말보다 글씨로 표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작은 위로 하나라도 손끝에 담을 수 있다면 어떨까 싶어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손글씨 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글씨 테라피스트'가 된다.

손글씨 세러피 시간에는 글씨가 예뻐지는 수업이 아니라,

나만의 손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감정이 정리되는 시간이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글쓰기 활동


아직은 시작 단계라 조심스럽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그 과정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조금 흐릿했다면,

감정 하나를 골라 그 단어를 써보세요.

‘기쁨’, ‘짜증’, ‘지침’, ‘고마움’…

그 글씨가 오늘의 나를 말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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