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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도 되는 일을 하다가

돈 받고 수련 중입니다.

by 이을

청소기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먼지통 잠금장치였다. 순간 놀랐지만, 이미 한 번 깨졌다가 접착제로 붙여진 흔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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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가 처음 망가뜨린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평소처럼 바닥만 청소하고 끝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그저 더 깔끔하게 먼지를 털어내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려다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주 3회 이른 아침 시간에 1시간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부업일 수 있지만, 내게는 조금 특별한 하루의 시작이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하며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이렇게 깨끗해졌지?”

마치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처럼, 내가 공부에 집중하는 사이 누군가 조용히 와서 공간을 정리해 놓고 간 것 같았다. 신기했다. 그리고 그 신기함이 마음 한편에 남았다


어느 날,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서 내가 공부했던 스터디카페의 청소 아르바이트 구인글을 보았다.

이미 구인은 마감된 상태였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혹시 나중에 사람 필요하시면 연락 주실 수 있나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를 보냈었다. 청소일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게다가 생각이 너무 많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망설임 없이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꽤 신선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5개월쯤 지난 어느 날,

"아직도 일하실 생각 있으세요?"라는 문자를 받으며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한 달하고, 한 주가 지난 신입이지만, 1시간 이상 걸리던 청소시간을 50분으로 단축하면서 제법 구조화를 시키면서 단순화하고 있다.


나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 생각이 원래 많은 기질까지 더해져, 순간순간 내 마음을 비워낼 '리셋'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요가, 명상, 유산소와 근력운동 등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시간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계기도 그런 나의 성향과 맞닿아 있었다.

사실 스터디카페의 청소 시스템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주말 아침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밤에는 일찍 잠드는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주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른 아침의 작은 변화는 내게 균형을 되찾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내게 1시간에 1만 4천 원이라는 아르바이트 수당 외에

책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물론, 조용히 내 마음을 수련하는 시간이 되었고,

나의 마음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어제도 늘 하던 대로, 조용히 청소를 시작했다.

구석구석 돌며 먼지를 닦고, 의자들을 가지런히 밀어놓으며 정돈되는 깔끔함.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내가 이 공간을 처음으로 깨우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작은 책임감이 들었다.


그러다 먼지통 안쪽에 꽉 차 있는 먼지들이 보였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 셔 1시간이 안 걸리게 단축된 청소시간에 조금 더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매번 안쪽까지 닿지 않는 곳이라 늘 그대로 두고 지나쳤다.

먼지통이 분리가 되면 되는데, 분리가 안되니, 안쪽까지 꽉 차서 답답하게 느껴졌다.

좀 더 깨끗하게, 좀 더 완벽하게, 안쪽까지 먼지를 제거한 후, 정리를 하고 보니,

바닥에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무언가 확인해 보니, 먼지통의 잠금장치가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예전에 떨어져서 접착제로 붙인 상태였다.

접착제 성질이 강해서 제대로 붙어있었는데, 내가 툭툭 쳐서 안쪽 먼지를 빼다 보니,

떨어져 버린 것이다.


사진을 찍어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청소 중에 떨어졌는데, 예전에 붙인 흔적이 있었습니다. '라는 설명글이 포함된 긴 문자를 보냈다.

상황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문제는 결국, 지나친 '열심'에서 비롯되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하다가, 시간과 에너지를 스스로 흘려보내버린 셈이었다.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예전에 부서졌던 걸 모르고 있다가,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

'사진에 흰색 접착제가 묻어있는 것이 보이니까 괜찮아'

별일 아닌데 일을 곱씹는 내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나답기도 했다.

오늘 청소기 소음 사이로 들리던 법정 스님의 오디오북 한 구절이 마음에 툭, 스며든다.

"정체되지 안혹, 하루하루 새롭게 피어나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어제 들었던 또 하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을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은 곧 나의 법당을 닦는 일입니다."

순간,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먼지를 털고 있었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그건 공간이 안라,

내 마음 어딘가가 정리되지 않은 채 머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장님의 괜찮다는 답장을 기다리는 이 순간, 지금부터 나는 우리 집에서 내 시선이 머무는

내 방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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