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수련 중입니다.
5시 30분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에 이어 아침 스터디카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아침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하고, 어젯밤 필라테스 수업 때 복근을 과하게 썼는지
장이 꼬인 느낌이 들었다.
'가기 싫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거 같았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꼬인 장을 마사지해 주었다.
벌떡 일어나, 씻고 바로 전화기, 헤드셋, 우산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법정스님의 강연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걸어갔다.
어릴 때부터 법정스님의 책을 읽으면, 무언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었기 때문에
법정스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설렘을 가지고 아침 수련을 시작했다.
나에게 아침 수련은 집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아침 6시, 토요일이라 거리에는 운동하러 나온 남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우산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집에서 5분 거리이기 때문에 금세 스터디 카페에 도착했다.
요즘 시험기간이 끝나서인지 스터디 카페 안은 큰 어지러움 없이 깨끗하게 보였다.
우선 문을 열고 휙~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창고 문을 열었다.
어제 내가 정리하고 나온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제 커피는 거의 마시지 않았군'
'아~ 옥수수수염차를 많이 마셨네'
재빠르게 커피와 옥수수수염차와 종이컵을 채워놓고,
주변 정리와 책상을 닦고, 청소기를 돌렸다.
지정석에는 책들과 물건을 그대로 두고 가기 때문에 살짝 성향을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어지럽게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있거나, 지우개 가루가 그대로 책상 위에 있거나,
선반에 책을 그냥 쌓아놓기도 한다.
어떤 책상은 딱 필요한 부분만 올려져 있고, 깔끔하다.
각각 학생들의 성적을 모르니, 성적하고 상관없이, 다르게 펼쳐져 있는 상태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에 깊이 빠질 사이 없이, 바로 바닥 물걸레질을 했다.
외부 휴게공간 청소를 끝으로 쓰레기 분리를 한 후, 청소기에 쌓인 쓰레기를 비웠다.
청소를 하는 동안,
핸드폰 앱을 통해 법정스님의 목소리를 계속 들었다.
이제 익숙해진 청소를 하는 내 몸과
귀로 듣는 스님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내 정신이
분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언가 바로바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때는
공존하는 느낌도 들었다.
법정 스님의 강연 중,
청소하면서 들은 강연은 1998년 10월 2일 길상사 정기법회 법문이다.
아침이라 그런지, 법정 스님의 위트 있는 목소리가
마음에서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은 가려진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것'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각자의 내면세계가 다르다는 의미'
'얼굴='얼'과 '꼴''이라는 의미로 내면, 정신세계의 형태, 모양이다.
우리는 내 내면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다니고 있으므로,
어찌 보면 그것은 대단한 용기일 수 있다고 하셨다.
각자 특색을 지닌 다른 모습으로
나를 겉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쌍둥이라 할지라도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특색에 따라 각자 틀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따라서, 나답게 살아야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본 얼굴로 살 수 있다.
나의 얼굴을 닦는 행동은 법당을 청소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진짜 법당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공간, 내 마음이 가는 곳이 곧 법당이 된다.
부처님의 불상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내 공간을 청소하는 일은 나만의 법당을
청소하는 의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주셨다.
간절한 마음,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의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청소하는 마음.
이것은 또 다른 모습의 부처님의 마음인 것이다.
앞만 보고 사느라 제자리를 바라보거나, 뒤돌아볼 여유가 없이 살았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있는 공간, 스터디 카페에서
듣는 스님의 말씀은 깨달음을 주셨다.
정결한 마음, 맑은 영혼이 담긴 마음이 쌓이다 보면,
내 얼굴에 그대로 묻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스님의 말씀은 남의 것이 아닌,
나 그대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나 다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하셨다.
내 경우, 나만의 개성, 특성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다 보면, 중간에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느낌이 들어서
중도에 멈추게 된다. 나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로해 주는 마음이 인색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수련은 법정 스님과 함께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금, 토, 일, 3일 동안 하루 1시간 그동안 해 보지 못했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1시간의 아르바이트 수당에 비할 수 없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기 안에 꽉찬 먼지를 쏟아 버리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
이 느낌을 잊지 않고 싶어서, 집 청소를 했다. :)
이제는 쉬는 시간이다.
오늘은 지금처럼 과하지 않게 꾸준하게 조금씩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칭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