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현희 Feb 13. 2020

생각보다 쉽다.

자리만 채워준다면

혼자 생각하기를 몇 달. 회사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휴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하루라도 빨리 같이 일 하는 동료와 상사한테 먼저 알려야 했다.


'순서는 어떻게, 시작은 어떻게 띄워야 하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부정적이겠지? 뒤에서 욕하진 않을까.'


생각이 들기를 수차례. 오랜 기간 오랜 고민 끝에 내 고민을 입 밖으로 얘기하기로 했다. 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결정한 후 동료들에게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또 놓치다가 그렇게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은 절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후임자를 받기 위해서는 정기인사시기와 맞물려야만 했다. 내가 휴직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주 한 주 인사이동시기에 가까워지도록 동료들에게 말을 꺼내지 못 한 나의 마음은 점점 불안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영영 못하는 거 아닌가.', '과연 이토록 소심한 내가 사람들한테 정말 말할 수 있을까.' 등의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공론화시켜야 부서원들도 당황하지 않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있다.


나의 이러한 고민을 주변 지인들에게 하나씩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그때의 나는 답정너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듣고 싶은 내용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또 묻고 주변인들을 귀찮게 했다.


"휴직을 하면서 어떻게 욕을 안 먹을 수가 있겠어. 그거는 감안해야 하는 거고 사람은 새로 받으면 되는 거고 안 그러면 네가 더 힘들어져. 욕먹는 건 잠깐이지. 지금 하는 걸 보아하니 이리저리 눈치 보다가 어영부영하고 결국 못 하겠구먼. 시간 금방 갈 거야."


"솔직히 다들 휴직 쓰고 싶은데 능력이 안되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안 쓰는 거지. 근데 휴직이 쓰라고 있는 거잖아. 뭐 남은 사람까지 걱정해."


그렇다. 생각보다 쉽다.


내가 몇 년 전부터 꿈꾸고 몇 달간 고민해온 일들이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힌트와 답을 동시에 얻은 꼴이다. 편하게 생각하면 참 쉽다. Take it easy! 잠깐만 아주 조금만 이기적이면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말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그동안 주변에 많은 양보를 하면서 살아왔다. 육아휴직, 정년퇴직, 병가 등의 사유로 회사를 잠시 떠났던 사람들. 그때마다 내 업무는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휴직은 하고 싶지만 그 사람들처럼 충분한 휴직사유가 없었기에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니고서는 내 평생 절대 휴직을 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이기적이고 싶었다. 그들처럼.


 많은 조언을 구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조언으로 기회를 잡았다.


회사에 말하기 전 스스로의 목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뚜렷한 계획, 다녀와서의 성과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 일 년 뒤 과연 내가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서 타락하고 발전이 없을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정답이 있고 정해진 사람처럼 사는 게 더 바보 같고 재미없는 일 아닌가.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 그래서 인생이 더 재밌는 거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데 가족도 아닌 남한테 나를 이해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가 누가 됐든 나의 휴직사유를 듣고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 내가 가진 생각을 회사에 있는 누군가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그런 준비된 자만이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닌 또 다른 휴직을 할 수 있다.


끝끝내 말하지 못한 나는 인사이동 시기에 다 달아서야 말할 수 있었다. 다른 로 결재받는 도중에 '지금 얘기할까? 말까?' 생각만 수십 번. 너무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떨려본 적이 또 있었을까. 아마 신입사원 입사 면접 때 이후로 처음이겠지? 결국 또 말 하지 못 한채 고요한 사무실에서 모두가 퇴근하기를 기다린 금요일 여섯 시.


"저 차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행운의 여신이 내 곁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하고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더 이상 말할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금요일인 오늘 말을 하지 못한다면 주말 내내 수차례 고민하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괜히 말했는데 안 된다고 하면 이미지만 나빠지는 거 아닐까?'. 그래서 꼭 주말이 오기 전인 금요일에 내 짐을 덜어내야 했다. 그래야만 휴직의 주목적인 영국, 유학비자와 같은 후속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회사에서의 휴직은

다른 어딘가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월급쟁이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