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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대표 Feb 19. 2021

을도 갑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거래를 그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병아리 사업가이다. 어떻게든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은 매출을 포기하고 싶은 치명적인 고객사를 마주하게 된다. 예전에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많아 실무자의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 올해는 갑질이 심한 고객사와 거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실을 다져 더 좋은 고객사만 받겠습니다.’ 이게 나의 최종 모토이다. 물론 웬만한 건 모두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결정에 따라 아닌 건 버리기로 했다.



1. 갑에게 받은 스트레스 을에게 푸는 고객

갑, 을, 병, 정은 계약서 상 표기하기 위한 관계라고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정글의 세계처럼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누구에게는 을로 위치한다. 먹이사슬 생태계도 있다. 나에게 고객사는 갑이며 나는 그들의 을이다. 그런데 그 갑도 누군가에게 을로 대해진다.

위에서 받은 스트레스 아래로 푸는 고객사가 있다. 저녁 10시에 연락해서 내일 아침까지 작업해달라고 떼를 쓴다. 창의력이 필요한 기획서를 당장 모든 직원이 퇴근한 상황에서 아침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어떤 경우는 상위 갑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면서 전화를 끊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겠지만 감정을 들어줄 만큼 가까운지도 모르겠고, 전화를 들고 ‘네 네’ 추임새를 줘야 하는 담당자의 시간이 너무 아까울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뭔지, 왜 전화했는지 알 수가 없다. 업무 외에 전화가 너무 잦다.


2. 이리저리 휘둘리는 고객

업무를 하다 보면 여러 업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이 된다. 최상위 갑사에서 지나치게 변덕을 부리게 되면 일이 방향성을 잃고 산으로 간다. 그런데 을 사에서 갑사가 흔들리는 대로 출렁거리면 병, 정사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중심을 잡고 일을 끌고 가야 한다. 또한, 상부에서 컨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가 지나친 충성심을 보이고자 업체를 개 잡듯 잡는 경우도 있다. 완벽한 2~3개가 아닌 비슷한 시안을 8번이나 만들면서도 포인트를 못 잡아서 뒤집기를 반복한다. 막상 미팅에 가보면 매니저급의 지시사항은 아주 명확하다. 단지 어리버리한 일처리 능력과 잘못 배운 인성이 버무려져서 나온 행동들에 고통받고 있을 뿐이다.


3. 개인 비서처럼 대하는 고객

아무 이유 없이 전화해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끊는 경우이다. 자기 집 강아지, 와이프, 친구 이야기, 사업 이야기 등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일 얘기로 시작하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어느 날은 본인의 생일이라고 갖고 싶은 물건이라며 사이트 주소를 보내줬다. 그의 당당한 요구에 충격받았다. 결국 기업 카드로 그 담당자의 개인 생일 선물을 구입해드렸다. 비즈니스적인 미팅이 아닌데도 점심 한번 먹자며 회사 앞으로 왔다. 한 끼 먹는 건 어렵지 않지만 상황이 갈수록 사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심신이 매우 지친다. 마치 눈치 없는 꼰대 상사를 만난듯하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고객사의에게 벌어진 일이다. 업종, 업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몇 개는 바꿔 썼지만 정리를 하고 나니 그만 거래를 종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게 회사생활이 아닌 사업이어서 다행이다. 이 회사의 매출을 포기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비효율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 때가 있다. 올해 첫 번째 과제는 비효율을 유발하는 그 고객사 정리이다.


그동안 장단에 맞추려고 고단했던 우리 측 담당자에게 거래처 계약 해지 결정 사실을 알려야겠다.



이 프로젝트를 끝으로 그만 거래를 종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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