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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요리(25.06)

대단한 열정으로

by 영영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365일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만 큰 변화가 없는 제 외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죠. 게다가 못 먹는 음식도 딱히 없습니다. 물론 저 또한 사람인지라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있습니다. 하지만 괜히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읊다 그 가짓 수가 몇 개 되지 않아 되려 민망할까 봐 따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잘 먹던 꼬마는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할 적에는 곁에 가 괜히 어슬렁거리고는 하였습니다. 일손으로 도움이 될 리는 만무하고 사실 익어가는 고기 한 점, 볶은 나물 한 입 먹으려고 서성거린 것입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주방을 그리 들락거려서인지 스무 살이 넘어 자취를 하자 이것저것 요리도 하나씩 해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의 답습이었습니다. 어깨너머로 터득한 레시피로 해먹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을 스스로 재현해 보고자 연락드린 적도 있습니다. 필요한 재료를 여쭤보고 요리 방법을 여쭤보았습니다.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맛이 나는 것을 보며 괜히 뿌듯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두 개의 요리를 더 따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음식들만 반복해서 해먹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쯤 하여 유튜브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영상들 중 요리하는 분들의 영상을 많이 구독하였습니다. 요리해 본 음식이라면 보다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더라도 유튜브를 통해 배우고 도전해 본다면 이제 그 음식은 제가 요리할 줄 아는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요리 가능한 음식의 가짓수를 늘려갑니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재료들이 눈앞에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기를 구운 음식이 될 수도 있고 볶은 음식이 될 수도 있으며 찐 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 어떻게 그려 나갈지 제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오늘은 이 재료를 한번 쪄볼 예정입니다. 나의 마스터 쉐프인 유튜브를 뒤적입니다. 이미 내가 생각한 그 음식을 직접 요리해 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촬영하고 먹어봤으며 다른 시청자들의 검증도 마친 레시피가 떡하니 있습니다. 라면 스프와 같은 조미료가 석,박사님들의 혼이 담긴 결과물이라면 이 영상에 나온 음식은 이 유튜버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칼자루와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활을 건 이 영상을 믿으며 오늘의 만찬을 준비합니다. 헷갈리는 부분은 여러 번 확인하며 제시하는 레시피를 준수합니다. 물론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계량하지 않습니다. 간장이 네 스푼 들어가지만 준비한 재료의 양과 입맛을 고려하여 두 스푼 반만 넣기도 하며 다진 마늘 한 스푼이지만 1인당 마늘의 연간 섭취량 세계 1등인 나라의 국민답게 넉넉히 두세 스푼은 넣어줍니다. 그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갑니다. 날 것 그대로의 재료를 제 입맛대로 바꿔나갑니다.

그렇게 원하던 음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손이 많이 간만큼, 시간이 좀 더 걸린 만큼 맛있길 바랍니다. 어머니는 음식이라는 것은 요리사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만큼 맛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음식이 그만큼 더 맛나다고 하십니다. 그 맛의 원천이 노력과 인내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음식은 특히 손이 많이 갔습니다. 전날부터 잘 재워둔 식재료를 사용하여 요리합니다. 정성이 들어가서인지 보기에도 군침이 돕니다.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긴 했습니다. 원래 내 음식은 다 맛있기에 혼자 먹을 때는 조금 아쉬워도 나의 노고를 나 스스로 치하하면 되기에 걱정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는 제아무리 무조건적 칭찬을 해주실 분과 먹더라도 염려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쌍따봉입니다! ‘엄지 척!’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 하나의 엄지는 오늘의 노력에 대한, 또 하나는 어제의 노력에 대한 엄지라고 생각합니다. 두 개의 엄지에 뿌듯해하며 저도 먹습니다. 역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제게 행복과 뿌듯함을 선사합니다. 이렇게 또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 과정에 제 노력과 애정이 투입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제 노력과 정성과 애정이 들어가는 것은 비단 음식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이는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게다가 인생은 정해진 레시피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수많은 참고사항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나의 인생이기에 제가 원하는 모습을 향해 나아갑니다. 고기를 구울지 볶을지 삶을지 정하는 것처럼 살아갈 방식을 정해갑니다. 유튜브에는 이렇게 살면 좋다더라, 저렇게 살면 좋다더라 말하는 영상은 많습니다. 요리처럼 전체적인 과정을 안내해 주는 영상은 없습니다. 혹시나 있다면 그런 영상들은 피해야 하는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요리와 달리 변수가 너무 많아 천편일률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센 불에 빠르게 구울 수도 있었고 이런저런 양념을 섞어 볶을 수도 있었습니다. 강한 불에 구웠다면 타버릴 위험은 있겠지만 시간이 단축됐을 것입니다. 양념에 볶았다면 다소 편하게 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적도 없고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보증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다급함으로 일을 거스를 수 있기에 조금은 천천히 갑니다. 너무 힘들이 지 않고 손쉽게 가는 것이 편할 수 있지만 결과는 투입에 비례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번거롭고 힘들어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한 번 더 직접 챙기며 애정과 관심을 쏟습니다. 당연히 어려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힘들 때 얼마나 더 잘 되려고 인생이 이렇게 버라이어티 한 지 생각하고 그 어려움을 삶의 일화 하나 추가되었다고 생각하는 배우처럼 저도 얼마나 더 맛있는 (?) 인생이 되려고 이렇게 정성과 관심과 애정을 요하는지 생각합니다. 요리 중 가끔 가스 불을 올리고 딴짓을 잠깐 하는 것처럼 제 삶에도 그렇게 여유 있고 딴짓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끓어오른 물이 냄비를 넘치려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불 조절을 하는 것처럼 제 삶의 활시위도 너무 느슨할 때 다시금 긴장감을 위해 힘껏 당기고 있습니다.

조금 더 맛있는 요리를 위해 귀찮아도 한 번 더 신경 씁니다. 삶에 행복한 순간이 한 번 더 있길 바라며 한 번 더 제 삶에 애정을 쏟습니다. 그렇게 제 요리는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맛있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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