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현재를 살고
매주 편도 180km를 움직입니다. 왕복이면 360km. 편도의 경우 차가 막히면 세 시간, 막히지 않으면 두 시간입니다. 매 금요일 혹은 토요일 세 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텨 냅니다. 퇴근 후 서울로 가는 길에 겪는 교통체증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한 주가 마무리 되었음을 뜻하기에 묵묵히 참으며 서울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모두가 깊은 잠에 빠졌을 시간에 주섬주섬 일어납니다. 집이 아닌 숙소에서 하루라도 덜 자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달랩니다. 또 한편으로는 일요일 저녁의 교통체증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성공한 삶을 사는 방법 중 하나가 도로 위에서 버리는 시간을 줄이라고 하는 격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찌 반대로 행하는 중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이런 시간도 언젠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 삶의 양분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습니다.
차에서의 시간은 고독의 시간입니다. 물리적으로도 혼자이지만 심리적으로도 혼자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때리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멍때리며 나아갑니다. 물론 교통상황을 보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저 머리를 좀 비운 채 맘 편히 운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시간을 훑습니다. 짧게는 당장의 주말을 되돌아봅니다. 즐겁고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되짚으며 또 한 주를 버틸 에너지를 얻습니다. 멀게는 과거의 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그 순간의 그 선택이 만든 파동이 점점 더 큰 파동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로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습니다. 아쉬운 선택도 있고 잘한 선택도 있습니다. 아쉽다고 하여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했다고 하여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지금 이곳에서 그 순간과 그 선택을 떠올리는 저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미래를 그려봅니다. 원하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중 하나가 이루어진 미래를 그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소망이 실현된 미래를 그립니다. 그리다 보니 본 적 없는 그 미래가 그리워집니다. 물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꿈꾸고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 나간다면 또 다른 원하는 것들이 생겨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하며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과거를 훑고 미래를 그리고 나니 결국 현재를 그냥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과거는 회상하였지만 보내주었고, 미래는 꿈꾸었지만 이 또한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운전대는 움켜잡습니다.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반가운 연락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반갑지 않은 연락이 오고는 합니다. 가끔 좀 더 늦게 왔으면 하는 연락이 벌써 도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 연락을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조금 멀어도 못 갈 거리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한걸음에 달려갑니다. 하루 좀 편히 못 자면 어떻습니까. 그냥 옆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게 그냥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고민하고 슬퍼하고 기뻐했더니 그냥 자연스럽게 이렇게 행동하나 봅니다. 그도 나의 등장이 이상하지 않다는 듯 자연스레 맞이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달려온 터라 너무 늦지 않아서인지 많은 분이 계십니다. 그렇기에 조용히 한쪽으로 가 친구를 기다립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함께 간 다른 친구와 연거푸 술잔을 채웁니다.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저와 함께 간 친구들에게 옵니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말이라도 하여 생각을 덜 하고 싶은 것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나간 시간 동안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아쉬워합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잘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뭐 또 그냥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 아니겠냐고 합니다. 덤덤하게 말합니다. 겉은 덤덤하지만 친구의 속마음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저렇게 말하는 친구를 보며 그간의 시간 속에서 친구는 참 많이 단단해졌음을 느낍니다.
지난 시간을 잘 놓아주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과거를 추억하며 과거를 곱씹으며 살 수 없습니다. 과거의 슬픔이나 상처, 영광 그리고 기쁨 이런 것들에 잠식되어 살 수 없습니다. 존재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또 미래의 시간을 꿈꾸면서도 과하지 않도록 절제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기만 한다고 그 미래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리는 미래는 올 수 없는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미래에 매료되어 살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게 지나갔거나 오지 않은 시간은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지금을 꽉 잡습니다. ‘지금을 잘 사는 것’이 행복한 과거를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으며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목적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넘나들다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속도로 위 지금 이곳에는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달려온 길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달려갈 길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예의주시합니다. 보내주고 놓아주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꼭 붙잡아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나도 그랬고 미래의 나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