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며 나아가는
누구보다 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제 모든 면을 샅샅이 알고 있어 종종 저는 그를 마주하기 부끄럽습니다. 때로는 모르지 않을까 하며 슬쩍 넘어가려 할 때도 꼭 그는 저의 그런 모습들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슬쩍 말을 건네어 옵니다. “얘, 너 이렇게 이렇게 했더라~?” 엄청난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다짐한 것들에 대해 조금 게으름을 피우거나 딴청 피운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부끄러운 지점을 콕콕 찌르는 것이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그의 기억력도 예전에 비해 연식이 오래됐고 또 기억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기에 다 기억을 못 합니다. 또 저장된 메모리를 훑는 속도마저 다소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언젠가 제가 했던 민망하고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정말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흑역사도 머쓱하고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데 그는 마치 ‘나의 수치 플레이 모음집’처럼 이것저것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부끄러울만한 껀덕지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가 저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존재는 필연적입니다. 그가 제게 선사하는 것은 단순한 부끄러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발전하게 만듭니다. 스스로의 언행에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그 부분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단번에 고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그가 놓치지 않고 타일러 주기에 조금씩 개선됩니다. 때로는 위로하듯 제게 말을 건네고 때로는 다소 강한 어조로 재발을 방지합니다. 스스로의 다짐에 대해 느슨해진 제 자신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사회생활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하여 제언합니다. 그렇기에 실수는 있을지언정 조금씩 더 나은 관계성을 갖게 되고, 한층 더 사회인으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제게 채찍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채찍만 주었다가는 분명 저는 그와의 관계를 끊고 막무가내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억제기가 사라졌기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까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제게 당근도 줍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도 있지만 그는 제가 잘한 행동도 거의 다 꿰뚫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칭찬하고 포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무심하게 한 마디 툭. 과한 칭찬은 독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하나 봅니다. 간헐적인 칭찬이지만 그 칭찬은 제게 버틸 힘을 줍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 인생이라는 도화지에는 무언가가 조금씩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붓질 한 번 하기가 무서워집니다. 이제는 하나의 획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 그는 이런 상황에서 제게 용기를 줍니다. 지금껏 그려온 무언가가 그렇게 나쁜 그림은 아니니 자신감을 조금 더 가지고 써 내려가도 된다고 귀띔합니다. 잘못 그린 것 같아 좌절할 것만 같을 때 이전의 붓질이 나쁘지 않았다고 격려합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를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고 응원합니다. 힘이 빠지려 하는 제게 힘을 줍니다. 덕분에 저는 저만의 옹벽을 지켜내고 약진을 꿈꿀 수 있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채찍과 당근을 받습니다. 받기만 하고 그에게 그 어떤 것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입니다. 불공정 거래뿐만 아니라 거래의 단절로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책에서 본 좋은 구절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따뜻한 말 혹은 위로의 말들을 그에게 전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한없이 멋대로 사는 녀석이 되지 않도록 계도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합니다.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서도 위로의 말을 건네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렇게 제가 선물한 좋은 말, 위로의 말들은 부메랑이 되어 제게 다시 돌아옵니다. 보다 성숙해진 그는 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이끌어 주기도 하고 더 위로가 되는 말들을 다시 제게 전해줍니다. 이렇게 그는 지속적으로 저와 소통합니다. 나의 구석구석을 그가 알 듯 나도 그의 구석구석을 알고 있습니다. 나도 발전하고 그도 발전합니다. 나도 위로받고 그도 위로받습니다. 완성된 인간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계속 제게 피드백을 해줘야 하며 저도 그가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줘야 합니다.
‘그’는 ‘나’이며 ‘나’는 ‘그’입니다. 스스로를 붙잡아주고 땅겨주며 끌어주고 또 밀어줍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 비록 그 ‘더 나은 사람’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합니다. 이번 달 그는 저에게 많은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회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 소중한 인간관계에 조금 더 진심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이 쉽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습니다. 미안하게도 이번 달 저는 너무 바빠 그에게 감사를 충분히 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넓은 그는 제게 기회를 좀 더 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고마움에 이자까지 쳐서 8월에는 그에게 더 많은 고마움을 표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