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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주인공(25.08)

소년만화 그리고 나만의 만화

by 영영

지난 4월 재밌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고 당신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을 제 삶에 더욱 초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또 다른 애니메이션을 추천받았습니다. 소년만화의 정석이라고 합니다. 사실 만화를 잘 모르기에 소년만화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주인공이 소년이겠거니, 그의 일대기를 그렸겠거니 짐작할 뿐입니다. 소년만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시련에서도 주인공은 늘 선(善)을 택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일전의 만화에서는 여러 등장인물이 입체적인 인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들은 선(善)과 악(惡)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으며 그 결과 한 때 그들에게 ‘악’이었던 대상이 ‘선’이 되기도 하였고 ‘선’이었던 대상이 ‘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늘 고민했습니다. 무엇이 ‘선’인지. 혼란도 많이 겪었습니다. ‘선’과 ‘악’이 뒤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하였습니다. 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저 또한 한때는 정말 싫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자 마냥 싫지만은 않았을 때가 있고 참 좋았던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자 예전만큼 좋지 않았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는 저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늘 ‘선’을 선택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한다는 만화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만화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과연 혼란을 겪지 않을지 궁금했습니다. 스스로를 입체적이라 생각하는 ‘나’는 입체적이지 않을 것 같은 ‘그’를 이해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야기 속의 ‘선’과 ‘악’은 분명했습니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으며 무한한 생명을 얻고 햇빛을 보거나 목이 베이지 않는 한 웬만한 상처에는 큰 타격도 없는 혈귀(血鬼). 그리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을을 단련하여 혈귀를 처단하는 귀살대(鬼殺隊) 간의 다툼이 주제입니다. 유치한 주제일지 몰라도 한 화, 한 화 넘어가며 알아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흡입력이 꽤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역시나 주인공 소년은 듣던 대로 정직한 녀석입니다. 그의 사전에 ‘권모술수’란 없나 봅니다. 정도(正道)를 쫓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는 정직한 소년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왕도(王道)마저 거부합니다. 잔꾀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늘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의 고민거리는 선과 악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더욱더 ‘선’을 향해 정진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욱 강한 귀살대원이 되어 그가 꿈꾸는 ‘선’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대단합니다. 아무리 목표가 뚜렷하다고 하여도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생각하였다고 할지라도 행동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늘 그 어려운 것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끝이 아닙니다. 그는 참 이타적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욕심부리며 혼자 가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가려고 합니다. 훈련 후 한창 배가 고플 때도 그는 자신의 주먹밥 한 덩어리를 반으로 나누어 동료와 함께 먹습니다. 부상 후 회복훈련을 받을 때도 회복이 더딘 동료들을 격려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합니다. 또 혈귀와의 전투 중 그가 알게 된 전투 노하우를 전수하고 동료와 함께 나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혈귀를 박멸하겠다’는 대의(大意)를 위해 함께 가는 것은 응당 맞으나 주인공의 이타심은 ‘인류애’를 떠올리게끔 합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나도 주인공처럼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선’과 ‘정의’를 추구하고 동시에 이타적인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제 마음을 알았나 봅니다. 언젠가 주인공은 그가 행한 ‘선’의 행동에 대해 한마디 하였습니다. 그가 한 선한 행동은 언젠가 돌고 돌아 그 자신을 돕는 것이라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당장은 아니라도 분명 언젠가 나도 그에게서 도움받을 일이 있을 것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늘 남을 돕는다고 합니다. 멋있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늘 실천으로 옮기는 것도 멋있습니다. 이게 바로 ‘소년만화’인가 봅니다.


물론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상황은 잘 없습니다. 만약 둘 중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악’을 선택한다면 ‘사필귀정’이 걱정될 뿐만 아니라 법의 심판까지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도’와 ‘왕도’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약간의 ‘꼼수’를 쓰면 좀 더 편할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꼭 이타적일 필요가 없는 상황도 많습니다. 조금 ‘이기적’일지라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하여 ‘잘 살겠다’는 대의를 잊지는 않습니다. 그저 대의를 향해 가는 길에 다소 ‘이기적’인 마음으로 ‘왕도’를 선택한다면 꽤 편할 것입니다. 당장 먹기엔 역시 곶감이 달콤합니다. 하지만 돌고 돌아 그 편한 선택이 달콤하지 않은 결과로 제게 돌아온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10년 뒤 후회하지 않게끔 공부하자’고 다짐한 것을 보면 어쩌면 아주 예전부터 이 사실을 알았나 봅니다. 그것도 어렴풋이 아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요. 그렇다면 이것 또한 ‘사필귀정’의 일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더 많이 ‘정도’를 택했고 ‘정의로움’을 추구하였으며 ‘이타적’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가끔은 ‘왕도’를 택하고 ‘이기적’이었던 선택도 물론 있습니다. 사실 앞으로도 늘 ‘정도’를 걷고 ‘이타적’인 행동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소년만화의 주인공보다는 입체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나만의 만화’ 속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요리하며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가끔은 요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처럼 저만의 만화도 ‘좌충우돌’, ‘우당탕탕’, ‘어리둥절’의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년만화’가 늘 ‘선’하고 ‘정의’로우며 ‘이타’적이라 재밌는 것처럼 ‘나만의 만화’도 훌륭하리라 믿습니다.



아! 지난 4월 만화의 제목을 적지 않아 많은 분이 무슨 만화인지 궁금해하셨습니다. 이번에 제가 본 만화는 ‘귀멸의 칼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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