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미한 긍정의 힘
3월 말이 다가오며 한 달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다양한 일을 겪으며 생각과 감정들을 잘 정리하여 편지를 쓰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제 생각과 감정을 잘 옮기기 못하여 답답해하던 와중 당신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연락이 귀하고 감사하여 전화를 드렸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의 전화였지만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걱정한다고 하셨습니다. 회사 일이 많은 것 같다고 하시며 기사로 본 옆집 회사는 성과급도 두둑이 주는 것 같던데 제가 다니는 회사도 그렇게 챙겨주시냐고 묻습니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사실 금전적인 부분보다 당신이 걱정하신 것은 저의 고단함일 것입니다. 새로 옮겨 한창 적응하고 스스로 성장하려 하는 지금의 부서는 업무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늦게 마치는 날이 많습니다. 항상 늦게 마치는 것은 아니지만 늦은 퇴근의 빈도가 잦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의 늦은 퇴근을 잘 알고 계십니다. 당신께서 걱정하시는 전화를 받고 나니 그전까지 정리하던 내용의 편지는 조금 늦게 부쳐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편지를 써봅니다.
부서를 옮긴 뒤 정말 가끔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꽤 늦은 시간이지만 제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보니 아직 퇴근하지 못한 것을 단번에 아셨습니다. 작년 명절에는 제가 내려가려고 하는 날 만약 너무 늦지 않게 마친다면 제가 한걸음에 창원으로 달려가 얼굴을 뵙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자정이 다 되어 퇴근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시간에는 차가 막히지 않아 열심히 달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새벽 네시가 다되어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할 때쯤 어디까지 왔냐는 전화도 주셨습니다. 당신은 늦게까지 일하고 고향을 향해 내달리는 친구를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야근과 야간 장거리 운전에 대한 피로보다 오늘이 아니면 이번 명절에는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사실이 죄송스럽고 아쉬웠습니다. 명절 직전에 그렇게 부서이동을 하게 될 줄 몰랐기에 명절이 되기 한참 전에 제가 먼저 잡은 약속인데 제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작년 명절에는 뵙지 못하고 몇 달이 더 지나고 나서야 뵐 수 있었습니다. 저의 늦은 퇴근을 본의 아니게 직접 보시다 보니 제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전화기 너머로 당신은 나를 걱정하였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잘 버티고 있다고 의연하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더 잘 되지 않겠냐고 웃으며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젊을 때 고생해야 한다고 위로도 해주십니다.
괜찮다는 말은 정말 진심입니다. 힘듦은 있지만 저 정말 괜찮습니다. 사실 당신뿐만 아니라 저와 가장 대화를 많이 하고 제 하루하루를 온전히 다 알고 있는 분도 걱정합니다. 회사의 팀원들도 이전의 직무보다 업무량과 야근의 빈도가 많아 힘들지 않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질문과 걱정과 관심과 사랑에 저는 한결같이 대답합니다. “힘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말 괜찮고 만족합니다.”라고. 직장 동료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업무가 조금 많아진 게 아니기에 괜찮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혹시나 그들이 누군가에게 제 답변을 전달할까 봐 제가 가식적인 답변을 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러운 눈빛도 보냅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 더 설명을 합니다. “부서를 옮기기 전 다른 업무를 2년 정도 하면서 가진 생각은 ‘이 업무가 대체 유의미한가?’ 였습니다. 물론 ‘유의미함’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것이고 변동성이 있지만 당시 저는 그 ‘유의미함’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루하루를 그냥 버리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꽤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동료들은 아직 제 말을 100% 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들이 저의 말을 믿지 않더라도 저 말들은 모두 진심입니다. 물론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의미를 찾기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요즘 느끼는 힘듦은 유의미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어려움도 극복할 힘이 조금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유의미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시간이 더 흘러 무의미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지금은 되게 의미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무의미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쩌나 걱정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나중에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게 될지언정 지금의 제게는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자주 들었던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나 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씨를 잃지 않고 잘 이겨나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문제해결이든 개인성장이든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온기보다는 냉기에 가까운 말과 행동으로 문제의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냉철하며 자비 없는 듯한 사고방식이 문제해결의 상황에서만 발동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은 말과 행동의 출발점이라 그러한가 봅니다. 언젠가부터 제 말과 행동도 지나치게 냉철하며 때로는 공격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당신도 제게 업무환경이 많이 고단하냐고 물으실 정도였습니다. 저 스스로 개선하고 싶다고 느낄 때쯤 그러한 말씀을 주십니다. 지난 몇 달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의 습관이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 조금 부끄럽지만 이런 부끄러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스스로 변화를 꾀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근묵자흑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저를 가장 가까이서 응원하고 지켜봐 주시는 분은 밝고 긍정적인 분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한의 긍정을 발휘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강력한 긍정의 힘을 지녔습니다. 이렇게 따라 하고 스며들기 좋은 분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그분도 제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이전에는 물리적 거리와 민원성 업무가 있었다면 지금은 업무의 강도가 너무 강하다는 점에서 저를 염려합니다. 즉답을 하지 않고 의견을 묻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해소된 것이 너무 좋지 않냐고, 이제는 누군가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마음만 먹으면 얼굴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달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힘들다고 푸념할 법도 한데 의연하고 씩씩하게 상황을 이겨내려 하는 모습이 ‘진짜 어른’ 같다고 합니다. 다 그대 덕분이라고 감사하다고 웃습니다.
긍정과 유의미함 사이에서 저는 오늘도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한 달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힘들고 지치며 부정적인 생각과 권태로움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 당신께 쓴 26년 3월의 편지를 읽어보며 부정적인 상황 속 긍정의 씨앗을 찾고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무의미함 속에서 유의미함을 찾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