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여행('26.02)

by 영영

일본 여행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쉬움을 삼키고 다음을 기약하며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비행기에는 저처럼 여행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쉬움이 남기야 남겠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여행지에서의 행복이 묻어 있습니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꽤나 즐거웠나 봅니다. 반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화장법과 옷 입는 스타일로 미뤄봤을 때 일본인 같습니다. 역시나 손에 쥔 여권의 색이 파란색이나 초록색이 아닌 다른 색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한국 항공기를 타고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본인 관광객인가 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 재잘대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하하호호 웃습니다. 아마 한국을 떠나 일본을 여행하는 날의 저처럼 여행의 기대감을 한껏 나누고 있나 봅니다. 유명 맛집에서 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뉴를 먹을 생각에 신났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꼭 가보고 싶었던 유명 아이돌의 소속사 건물 주변을 배회하며 혹시나 그들을 마주칠 수 있지는 않을까 신났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외국인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인 한복을 입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인증사진을 남길 생각에 들떠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라는 ‘비일상’적인 시간을 앞두고 잔뜩 설렌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이들은 한국으로 여행 떠나는 일본 관광객들이라고 하나 봅니다. 나는 이제 일상으로 가야 하는데 그들은 일상을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니까요. 그리고 행여나 그들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다고 하여도 그들의 일상은 나의 여행지였던 일본이니까요.


여행 첫날을 떠올려 봅니다. 이른 아침부터 공항으로 가야 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딱히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소풍 전날의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에 잠들지 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래도 덜 피곤한 것 같습니다. 출국을 위해 체크인하고 짐을 부치는 등의 준비과정도 딱히 번거롭지도 않았습니다. 되려 공항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설렘이 좋았습니다. 모든 걱정과 근심을 두고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일상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날들이 너무 싫은 것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일탈과도 같은 시간이 기대되고 설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보고 싶었던 풍경, 자연경관 등을 즐겼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여행했지만 하루하루 여행일자가 줄어들며 생기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행복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날 아쉬워하는 나와 달리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찬 일본인 관광객을 보며 부러워하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의 비행시간 동안 그 부러움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부러움의 이유는 ‘결핍’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들에게는 있지만 제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였습니다.

그들에게도 돌아갈 ‘일상’이 있을 것이고 제게도 돌아갈 ‘일상’이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일상을 벗어나 여행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고 저 또한 오늘까지 ‘일상을 벗어나 여행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데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부터’ 여행이 시작되며 저는 ‘오늘까지’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재의 시점에 여행이 미래에 있지만 제게는 과거에 있습니다. 제게 여행은 과거이지 미래가 아닌 것입니다. 아, 나의 결핍은 ‘현재시점에서의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잠시나마 부러웠습니다. 여행을 방금 마친 자가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이를 부러워하는 것이 제법 웃깁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혼자 생각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처럼 오늘 여행은 내게 무엇인지 만들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여행은 내게 ‘일상을 내려놓기’로 정의됩니다. ‘일상’ 속에서 저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생각하며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어떤 순간에는 병렬식으로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직렬식으로 해결합니다. 그 와중에 혹시나 잊은 것이 없는지 살피며 나아가야 합니다. 꽤 정신없고 제법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일상’을 유지합니다. 반면 여행지에서 제게 주어진 임무는 그다지 몇 개 없습니다. 식당 잘 찾아가기, 길 잃어버리지 않기, 소매치기당하지 않기 정도의 임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일들은 그다지 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훨씬 덜 부산스럽고 고단합니다. 그래서 여행이 좋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피로함이 줄어드니까요. ‘일상’을 벗어났기에 ‘여행’이 소중합니다. 그러니까 ‘여행’은 ‘일상’이 있을 때 더 빛이 납니다. 제법 바쁘고 힘든 ‘일상’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행을 시작하는 저 일본인 관광객들이 부럽습니다. 일본은 내게 ‘여행지’였기에 그들에게는 사실 ‘일상’을 지내는 곳인 일본으로 돌아갈 것마저 부러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일상’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말입니다.


여행 첫날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일본 여행을 간다는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라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비행기에는 한국인만 탑승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 관광객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만 가득한 제게 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 며칠 전의 나는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일본인 관광객이었습니다. 다만 일본인이 한국인 관광객을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이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더라도 그들에게는 여행지였던 한국이 제 일상이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며칠 전의 일본인들이 부러워했던 여행지로 돌아가는 한국인 관광객입니다. 그들이 가보고 싶었지만 여행 일정상 가보지 못했던 맛집이 가득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먹으면 한복을 빌려 입고 얼마든지 고궁을 둘러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가 부러워한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살기 위해 귀국하는 관광객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는 외국인이 참 많습니다.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뭉뚱그려 서양인들까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고 각 나라의 이미지를 살린듯한 패션으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들은 지금 유명하다는 카페를 입장하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카페를 간 이후에는 줄 서서 먹는다는 베이글 집을 가기 위해 또 움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그 카페는 회사 바로 앞에 있지만 굳이 가지 않는 카페입니다. 그리고 그 베이글 가게는 처음에 몇 번 가봤지만 이제는 딱히 그 매력을 느끼지 못하여 더 이상 찾지 않는 베이글 가게입니다. 아마 저 외국인 관광객들은 딱 봐도 회사 근무복을 입고 점심시간 줄이 적게 서있는 식당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 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집니다. 내게 일상인 이곳이 그들에게는 귀중한 여행지에서의 반나절이겠지요.


이제는 여행이 끝났다고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도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누군가가 꼭 가고 싶었지만 웨이팅이 많아 못 갔던 식당을 마음만 먹으면 평일 퇴근 후에도 갈 수 있고, 한복을 입고 꽃단장을 하고 방문한 고궁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산책길 삼아 걸을 수 있는 곳에 있으니까요. 내게는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행에서의 귀중한 경험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누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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