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아이는 자라지 못한다.
상처와 함께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성장의 자양분이 상처와 불행으로 채워진 자아는 늘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기분이다.
너무 쉽게 화나고, 너무 쉽게 무기력해지고, 너무 쉽게 우울해진다.
상처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뎌졌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무뎌지지 않는다.
상처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려온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때 그 상처를 받은 아이의 삶은 돌려놓을 수 없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삶의 발자국으로 남아있다.
상처가 많은 아이는 불행해지기 쉽고 불행한 아이는 상처받기 쉬웠다.
불행에 익숙해져 행복한 순간조차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지만, 행복한 순간은 너무나 짧아서 자주 불행에 잠식되어 버리곤 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고, 무감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희망도 열정도 없는 삶은 건조하게 굴러가는 낙엽처럼 쓸쓸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언제든 부서질 수 있었다.
상처받은 아이에게 가장 큰 상처는 나조차 내 모습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붙은 상처가 내 모습을 혐오하고 미워하고 부정하게 만든다.
상처를 마주하기 두렵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밀어내고 무시하지만, 무시할수록 더 깊이 파고든다.
상처받은 아이는 상처에 대한 수치심으로 부정당하고 싶지 않다.
나도 너의 일부라고 인정받고 이해받길 원한다.
가끔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한다.
상처받은 상태로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아이를 달래주고 위로해준다.
그 아이의 유일한 편이 되어 준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누구든 너를 괴롭히면 내가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고, 혼내줄 거라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서로 다른 자아가 되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끌어 안아준다.
그것은 좀 별나고 이상해 보이는 상상이지만, 꽤 위로되고 마음이 든든해지는 일이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자주 불행하기에 불행과 함께 불쑥 찾아오는 상처들을 꾸준히 보듬어주고, 달래주어야 한다.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게 해주어야 하고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도록 들어주어야 하고 한다.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아갈지 불행하게 살아갈지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불행도 견디기 어려운 어느 날이 있듯이, 아주 작은 행복으로도 살아갈 가치를 얻게 되는 날도 있다.
그 어느 날은 살아 있어서 웃을 수 있고, 살아 있어서 가슴 깊이 충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아주 작은 이유에라도 희망을 기대며 순간의 행복을 소중히 하기를,
상처받은 삶까지도 찬란하게 살아 있는 나의 삶이 되기를,
내가 계속 자라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