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사용법

by 이음

요즘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뒷담화를 권장하곤 한다.

뒷담화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으면 상관없다.

소심한 나는 솔직하단 핑계로 주는 무례한 상처보다는 비겁한 뒷담화가 더 마음 편하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니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나에게 솔직하게 얘기해 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얘기하기 불편하거나 속 좁고 자질구레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아끼고, 또 나를 아끼는 소중한 친구라면

말하기 어려운 불만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불만이나 감정을 털어내어 시원한 마음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뒷담화는 좋지 못한 행동으로 취급된다. 무슨 얘기가 되었건 나에 대한 뒷담화가 상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 태권도부 활동을 하면서 1박 2일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보다 먼저 방에 들어와 일찍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 뒤, 친구 2명과 후배 3명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나를 보고 자는 줄 알았는지 불도 켜지 않고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을 불빛 삼아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친했던 후배 중 한 명이 친구들에게 나한테 장난이 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친구가 솔직히 사부님들이 나를 예뻐해서 얄밉다고 말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잠든 척하고 있는 나를 쿡쿡 찌르면서 계속 얄밉다고 말하는데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갑자기 학교에 선수부가 생겨서 어쩌다 보니 선수부에 포함되었지만, 말이 선수부였지 일찌감치 선수가 될 자질은 없었다. 집에서 지원해 줄 형편도 안 되어 도복은 늘 빌려 입었고 보호장비도 살 수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사부님들께서도 진짜 선수부 활동을 하는 친구들보다는 덜 엄격하게 대하셨는데 그게 친구들의 눈에는 차별로 보였나 보다. 태권도부 활동을 관두면서 아이들과의 교류는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가 달라진 후로 더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관계를 끊어낼 정도로 심한 말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학교와 학원에서 매일 마주치는 친구들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우리가 상대방의 등 뒤에서 쑥덕대는 말을 그의 면전에 대고 직접 한다면 이 사회는 도저히 유지되질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항상 상대방의 마음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한, 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다.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태도나 거슬리는 행동을 참아주거나 혼자 끙끙대기보다는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되지 않은 거친 감정들을 한차례 덜어내고 나면 오히려 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의 공간도 생긴다. 생각이 정리되면 이후에 이런 점 때문에 서운했었다든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든지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

솔직하게 터놓고 불편한 감정을 털어내고 나면 더 성숙한 친구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다만, 뒷담화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첫째, 앞에서 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감정이 격해져도 기본적으로 인신공격이나 외모 비하, 이유 없는 비난이나 심한 욕설 같은 것들은 자제해야 한다.

둘째, 뒷담화의 대상과 뒷담화를 나누는 대상은 서로 관계가 없거나 되도록 먼 사람으로 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들에게 직장 상사의 욕을 수백 번 한다 해도 가족들은 그 상사의 얼굴도, 나이도,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셋째, 상대방을 욕하고 나면 혼자서 역지사지를 꼭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상대방에게 항상 옳은지,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대체로 겸손해지게 된다. 일단 뒷담화한 것에서부터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집단 안에서의 뒷담화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뒷담화를 통해 연대하고 그 힘을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독초도 적당히 쓰면 약이 된다고 하는데, 뒷담화도 적절히 사용하면 상대방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도구로써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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