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이후로 생일 때마다 혼자 강릉에 다녀온다. 해돋이를 보면서 무탈하게 보낸 한 해를 감사하며, 새로 맞이하는 나이에도 나와 가족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더 잘되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일종의 세리모니였다. 수면으로 볼록 튀어 오르는 완벽한 해돋이를 성공하면 꼭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구름에 가려져 해돋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도 상관은 없었다.
11월생이라 항상 11월에서 12월 사이에 강릉에 다녀온다. 겨울이 시작되는 강릉은 맑고 춥다. 남들은 1월 1일에 해돋이를 보러 오지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혹은 훨씬 느리게 해돋이를 본다고 생각한다. 해돋이는 볼 때마다 경이롭고 아름답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해돋이를 못 볼 뻔했다. 다행히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언니와 형부 차를 타고 새벽에 출발해 당일치기로 해돋이를 보고 왔다. 혼자일 때는 먹기 힘든 회도 먹어서 좋았고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있으니 그것도 좋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계속 강릉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혼자 한 번 더 다녀와야지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강릉행 KTX를 예매하고 다음날 새벽 열차를 탔다. 여느 때처럼 밥을 먹고 바닷가를 걷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전과 다른 점도 있었다. 검은색 롱 패딩을 벗을 수 있었고, 평일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별로 없어서 유명한 맛집도 대기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바닷가를 보고 백사장을 거닐며 소리 내서 노래를 불러도 들킬 일이 없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강릉역까지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풍경들을 만나고, 가는 길에 보이는 현지인들만 찾을법한 국밥집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벽 열차를 타고 가서 소정의 목적을 이루고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왔으며 혼자서도 무탈했던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했다.
KTX를 타고 지나치는 새벽의 황금빛 풍경이 그리웠다. 다시 볼 수 없는 찰나의 풍경처럼 잔상만 남은 풍경을 떠올리며 그 안에 무언가 있었음을 생각했다. 산과 산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집 한 채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저 많은 논과 밭은 누가 관리를 하는 것인지, 저 동네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매번 궁금해하면서 무관심하게 멀어져 가는 것들을 상기한다.
파란 하늘과 하늘보다 짙은 바다, 흰 백사장뿐인 풍경도 그리웠다. 하늘과 바다와 백사장, 그 무수한 공백들 안에서 나의 걱정과 고민은 미미 해지는 덕분인지 모르겠다. 끝을 모르는 바닷속으로 나의 고민이 침전하기를 기다리면서, 때로는 떠오르는 걱정을 바람이 싣고 지나가길 기대하면서, 내가 보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마음이 답답해서 떠났고 답답한 일은 여전히 답답한 일로 남아있지만, 마음속에 또 무언가를 채우고 돌아와 나는 또 한 해를 버티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