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만화

by 이음

스물다섯 살 때쯤 한참 ‘나’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매일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여자들뿐인 직장에서 한참 막내였던 나는 동료분들에게 나의 이미지가 어떤지 물어보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 저 보면 무슨 이미지가 떠올라요?”

“명랑만화.”

그분은 유쾌하게 웃으시면서 '넌 그냥 명랑만화야.'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했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 줘야만 친구가 생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이 어울렸던 친구 두 명이 갑자기 절교선언을 했을 때도 아무 말하지 못했다. 몇 주 뒤에 다시 친구를 하자며 화해를 청했을 때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의기소침해있던 내게 다가와줬던 한 친구가 너네는 안논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그러냐고 대신 톡 쏘아 붙여줄 뿐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성격이 바뀌어 갔다. 독립을 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자 자존감도 올라갔다. 궁금한 게 많아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진심으로 내 삶이 나아지길 바라고 기대했다.


삶의 끝을 택하는 것만이 구원일 것 같던 시기를 겪고나니 사실은 멜랑콜리가 기본값이어서

마음의 상처는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고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에 언제고 잠식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한없이 불안해지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안에는 명랑만화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남몰래 성대모사를 연습하고, 돈까스를 썰면서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하는 모순을 간직하면서.


세상의 모든 우울을 나 혼자서 끌어안은 듯 심각해질 때면 내 모습에서 명랑만화를 보았던 그분의 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순정만화를 꿈꿨지만 결국에는 명랑만화가 되어버렸고, 약간의 체념을 보태면 꽤 마음에 들기도 한다.

엉뚱하고, 솔직하고, 어딘가 부족한 명랑만화 속 캐릭터처럼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 나로 살아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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