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에서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손을 붙잡고 뛰쳐나온 남자와 함께 도망친 신부.
뒤쫓아오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신나게 상기된 얼굴로 버스 위에 올라탄 남녀에게는
행복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버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들뜨고 벅찬 기쁨을 나눈 후, 숨을 고르더니
이내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진다.
굳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두 남녀의 얼굴에는 불안과 혼란, 두려움, 허무 등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때
스물넷의 5월 어느 날, 한강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첫 직업은 빵을 만드는 일이었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조리학과를 택했고, 칼질이 서툴러서 제과제빵을 택했다.
빵을 만드는 일은 재밌었지만 깊이 파고들 만큼의 열정은 부족했다.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출근할 때면 이따금 고요한 새벽,
아직 까만 하늘에 둥그렇게 뜬 달이 전부인 출근길 풍경에 문득 서러워지기도 했다.
홀로 불 꺼진 매장에 도착해 문을 열고, 라디오와 오븐을 켜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쉴 틈 없이 정해진 업무량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게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모자에 눌려 납작해진 머리, 기름 냄새 밴 작업복, 손과 팔뚝에 베이고 데인 자잘한 상처들은 어쩌면 어른으로서 견뎌내야 하는 무게였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또래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싶고,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스물넷의 나에게 어른이라는 무게는 버겁게 느껴졌고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스물넷의 나는 기회가 많았고 미래는 무한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통보한 후,
친구와 함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한강에 도착했을 때,
그날의 한강은 우리에게 청춘이자 해방이자 자유였다.
다시는 빵쟁이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며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언젠가 TV 광고 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따라서 한강 다리 위를 달리고 소리 지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시시콜콜한 얘기에도 웃고 떠들며 즐거웠지만,
다리 아래로 내려와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한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잠시 고요함이 스치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 한쪽이 무거워지는 기분,
즐겁고 홀가분한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두렵고 걱정스러운 기분,
생각해 보면 그때가 어른이 돼버린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전과는 내 삶이 달라졌음을 깨달은 순간,
나의 선택 하나가 내 삶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순간,
선택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말이다.
책임을 던져 버린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부를 잘했던, 못했던 그 시간이 지나면 학생은 졸업하고,
책임져야 할 때를 알게 되면 그렇게 또 한 시절을 졸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