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란 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때로 쓸쓸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 옛일을 생각해 보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옛일이 그리워져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삶에 여백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된다.’
청춘은 지나갔어도 아직 젊고 남은 인생은 한참인데, 이제는 영영 떠나버린 그 시절이 서러울 때면
어느새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다.
요즘은 백세 시대고 삼십 대는 아직 청춘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짜 청춘은 청춘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마음만은 아직 청춘이라 한들,
존재 자체만으로도 찬란했던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다.
막연히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던 시절,
넘어져도 창피하지 않고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어도 초라하지 않았던 시절,
어떤 예쁜 얼굴보다도 젊음이 가진 싱그러움이 더욱 빛났지만
정작 자신은 모르고 지나버린 시절,
청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언제부턴가 예전만큼 열정을 갖기 힘들고,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마음은 여전히 들뜨는데 체력은 가라앉고,
사는 일이 더는 새로운 것도 없는 것 같아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듯하면,
인생이 원래 서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사춘기를 겪는 것 같다.
성장의 변화가 아니라 노화의 변화를 겪으면서 늙음에 대해 생각한다.
늙는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만큼 설레고 기대감이 생기는 일은 아니었다.
깊어지는 주름과 줄어드는 머리숱을 보며 의연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삶의 방향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바뀌었다.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늘어나면서
영정 사진 앞에 서서 한 사람의 역사가 끝났을 때,
그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가 얼마나 젊어 보였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발자취를 남겼을까 궁금했다.
현대의학의 힘으로 노화를 늦춰보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덜 늙어보겠다는 노력이 의미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되면
지나간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늙음 또한 미룰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인가 한다.
때때로 노인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호기심, 순수함, 천진난만함을 간직한 노인의 반짝이는 눈빛이나,
굵은 주름 사이 해사한 미소가 아름다운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울적해질 때면
몽테뉴의 수상록 부분을 엮은 <죽음과 나이 듦에 대하여>라는 책 속의 문장을 되새기며 위로를 얻는다.
‘신은 생명을 조금씩 빼앗아 감으로써 인간에게 은총을 베푼다. 이것이 노화의 유일한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