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첫 조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낯선 경험이었다.
벌써 12살이 된 조카는 어릴 적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다.
본인의 엄마 앞에서 엄마보다 이모가 더 좋다고 말해서
엄마를 서운하게 하고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서툴고 어눌한 발음으로 이쁘고 고운 말을 해줄 때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딱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할까.
왜 엄마보다도 더 좋다고 해줄까.
어린 몸짓에서 뿜어 나오는 거대한 사랑과 그 맹목적인 애정 앞에서
나는 이 작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목숨이라도 내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첫 조카와 두 살 터울인 둘째 조카에게서는 난생처음 치유를 받는 기분을 느꼈다.
형부랑 언니와 거실 식탁에 앉아 수능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수시 넣은 몇 곳 중에서
1차 합격 후 수능점수 기준을 넘으면 최종 합격인 곳이 있었지만 나는 수능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부터 들었던 엄마의 핀잔,
네가 무슨 공부냐는 반응은 이 집안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게 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대학교에 가지 않기를 원했다.
두 살 터울인 둘째 언니와 나까지 둘이나 대학을 보내기 힘들다고 했다.
언니들은 모두 대학에 갔는데 나만 안 보내준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나는 전문대라도 가겠다고 우겼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취업이 가장 잘되는 걸로 전공을 택했다.
“형부는 공부한다고 욕먹어 본 적 있어요?
중, 고등학교 때 내가 받은 장학금은 언니들 학비로 다 사라지고
저는 첫해부터 등록금에 생활비 대출까지 받아서 다녔어요.”
가슴속에 남아있는 서러움을 숨기며 애써 덤덤하게 말을 하는데
저쪽에서 놀고 있던 둘째 조카가 갑자기 뛰어오더니
내 뺨을 쓸어내리며 위로하듯 “너무 착해서.”라고 말했다.
그 순간 당황스러웠다.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눌러 담았다.
지나간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까 딱히 원망하며 살지는 않았다.
원망하기는커녕
한때는 졸업하기도 전에 일을 시작해서 대출을 모두 다 갚았을 때 스스로가 대견해 자부심도 느꼈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할수록 그 마음이 자꾸만 닳아져 갔다.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다른 길을 택해서 이런저런 일자리를 옮겨 다녔고
학벌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은 외롭고 씁쓸했다.
나는 계속 자리 잡지 못하고 떠돌았고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계속 삶이 나아질 방법을 강구하고 열심히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다.
뺨을 만지던 작고 포근한 조카의 손길을 떠올리면
그 시절의 서러움이 모두 씻겨 내려간 것처럼 홀가분하다.
나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