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온전한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나는 붙잡을 것이 없어서 백일된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잡았다.
요즘 부쩍 공포 소재 이야기를 즐겨 읽는 아이다. '읽으면서 바로 써먹는 학교 괴담 시리즈', '어린이 과학 형사대 csi', 유령, 괴물 등 한창 그런 것을 좋아할 나이여서인지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아이는 꼭 내 근방에 있다. 팔이나 엉덩이, 다리, 등 중 하나는 나에게 은근슬쩍 귀엽게 붙여 놓는다.
그런데 나더러 자꾸 화장실 문 앞으로 와달라고 한다. 자기 큰 볼일 보는 화장실 문 앞에서 앉아 기다리라는 둥, 여기 문 앞에서 대화하자는 둥 화장실에 귀신이 나올까 봐 불안하고 무섭다고 호들갑이다. 그의 거사 앞에서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긴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여간한 일이 아니다.
또 화장실에서 샤워하며 머리와 눈을 감을 때 자기가 만든 어둠도 불안하고 두렵다고 한다. 캄캄한 어둠이 괴상한 이야기의 장막이 되어 1장부터 막장까지 긴 상상의 나래를 펼쳐지게 만든다고 구시렁거린다.
"사내 녀석이 뭐가 무서워. 너 곧 3학년이야!! 너 태권도 2품 유품자잖아! 엄마 여기 있어! 그런 거 앞으로 읽지 마! 그만해!"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나는 으름장 칼답 대신 너에게 해줄 말을 고약한 냄새 풍기는 화장실 문 앞에서 고민해 본다.
나도 불안이 심하고 겁이 많으며 두려움이 쉽게 찾아오는 기질이다. 아들이 겁이 많은 것은 날 닮은 듯하다. '어린이인 너는 너의 상상이, 어른인 엄마는 내 앞에 놓인 현실이 우리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든다.' 이렇듯 불안이나 두려움은 누구나 느끼는 것.
불안은 붙잡을 것이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작은 것이라도 붙잡을 것만 있으면 불안은 가라앉았다. 덩달아 두려움도 작아졌다. 나는 그 오묘한 경험을 내 아이를 통해 얻게 되었다.
아이가 갓 100일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서울로 1박 2일 출장을 갔다. 어린 아기를 혼자 보는 밤은 길고 어둡고 시렸다. 나는 출산 몇 주 전 지진을 겪은 몸, 출산 당일 병실에 누워 여진을 겪은 몸, 산후 조리원에서 화재경보음 오작동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아 헐레벌떡 아기를 향해 달려간 몸. 그런 경험이 있어 작은 소리에도 마음이 요동치는 내가 아이를 홀로 지킨다는 것은 불안에 휩싸이는 일,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붙잡을 것이 없어 백일 된 아기 배냇저고리를 붙잡았다. 아기의 따뜻한 온기, 안정된 숨소리에 웅크리고 긴장한 마음을 녹였다. 작고 여린 아기를 의지했다. 불안이 잠잠해지고 그날 깊은 잠을 잤다. 두려운 밤은 쉬이 지나가고 새날이 밝았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보이는 것을 붙잡아라.
무서운 호랑이, 동아줄을 잡은 오누이 기억하지? 두렵거나 무섭거나 불안이 찾아오면, 엄마, 아빠 손, 친구 손, 앞사람의 옷자락, 손잡이, 몽둥이 될 만한 것 등 보이는 게 있으면 작은 것이라도 다 잡아라. 자기의 두 손이라도 맞잡아라.
커가면서 힘 있는 친구, 학연, 지연도 다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부질없는 동아줄들을 놓게 될 것이다.
점점 눈앞에 잡을 것들이 사라지면 보이지 않는 것을 잡아야 한다.
"엄마!"하고 나를 찾고 불러도 엄마는 너의 곁에 지금처럼 가까이 있지 않을 것이다. 너도 점점 ...... 불안하다고 두렵다고 나를 찾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맞잡은 엄마 손의 용기 가득 온기를 네 손에 쥐어 줄 테니, 불안하거든 그것을 담은 네 주먹을 꼭 쥐는 연습을 해라.
엄마는 불안에 휩싸이면 일단 보이지 않는 내가 믿는 신을 찾는다. 마음에 새긴 말씀을 떠올린다. 지난 나의 작은 성공 경험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박히게 들은 부모님의 훈계나 시기심 없는 응원을 떠올린다. 또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너의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면 꼭 쥐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놓이더라.
그곳에 점점 잔잔한 평안이 쥐어지더라.
아들아. 지금 불안하고 두렵니?
......
화장실이면 휴지라도 꼭 붙잡아라.
오늘의 온전한 재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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