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온전한 성장을 찾아서 올곧게 돋을새김
남편이 회사에서 진급을 하던 날이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오롯이 이 세상과 우리집 식탁의 주인공이 된 남편을 축하하기 위해 작은 케이크 촛불 앞에 노란 가족 얼굴이 옹기종기 모였다.
케이크를 먹으며 남편의 직장생활 무용담을 듣던 아들이 볼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뭐 하던 사람이야?"
나는 내 입술에 덕지덕지 묻은 흰 생크림을 손으로 쓱 닦으며 들고 있던 포크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어렴풋이 몇 번 일하러 나가긴 했던 엄마의 지난 삶도 궁금한 너. 엄마가 뭐 하던 사람이었냐면......
너의 물음은 나의 기억과 나의 자아를 더듬게 한다. 그때 바로 들려주지 못한 답을 네게 뒤늦게 전한다.
엄마는 나비였어.
성인을 앞둔 고등학교 졸업식날, 성적 우수 학생 대표 중 한 명이 되어 지역대학교에서 상으로 주신 금반지를 부모님께 안겨드렸다. 짝사랑하던 국어선생님도 계셨고, 그분처럼 교단에 서고 싶었다. 졸업식에 오신 부모님은 곧 날아오를 금빛 물든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대학생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아 가세가 기울어졌어도 장학금을 받으며 과수석으로 졸업을 했다. 도서관에서 시집을 꺼내 읽고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임용고시에 매진했으나 여러 번 낙방을 했다. 부모님은 무엇이든 알아서 해낼 딸의 날갯짓을 응원해 주셨다.
교단에서 계약직 교사로 사회에 첫 발을 들였다. 천성에 맞는 일을 하며 이력서에 여러 줄 새겨 넣고 결혼 자금도 모았다. 제자들에게 존경도 받고 동료들에게 인정도 받으며 자유로이 날았다. 아빠를 만나며 삶에 사랑만 있어도 되는 줄 알았다. 부모님은 결혼을 하며 더 큰 나비가 되어 훨훨 멀리 날아가는 나를 대견스럽게 바라봐 주셨다.
엄마가 되어......
엄마는 껍데기란다.
너를 낳고 조리원에서 나온 나를 보고 누군가 말했다. '네 껍데기'라고. 옛 어른들이 어미를 그렇게 불렀더란다. 나비인 줄 알았던 나는 껍데기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땐 새댁이라 상처받은 티도 내지 못했지만, 껍데기로 살지 말란 소리로 마음에 오래 새겼다.
그래도 그 말이 맴돌아 네 껍데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모유수유로 우린 한 몸이어서 가장 친한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도 가지 못해 그 친구에게 갚지 못할 빚을 졌다. 아빠는 진급에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여행에 자유로워 보이는데, 나는 반복되는 우울한 타이니 모빌 멜로디를 들으며 자는 네 뒤에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내 옷엔 우리 엄마에게서 맡은 음식 냄새가 배고, 껌딱지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점점 네 친구 엄마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너도 점점 자라서 엄마의 과한 보호가 불필요하니,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고 다시 채용 공고를 찾아보지만, 자의 타의 경단녀가 되었다.
부모님은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딸의 지금 모습도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무엇 하나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두 분의 바람만큼 앞으로 더 날아가지 못했다는 것이 내내 돌부리처럼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알이다.
지금 너는 나의 작은 애벌레지만 곧 번데기ㅡ 사춘기를 거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것인데.
거기에 남은 허물, 말라빠진 껍데기가 되지 않기 위해, 내 모든 선택에 대한 아쉬움을 갖거나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엄마는 오늘도 무언가를 한다.
평소에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을 뜬금없이 묻는 애벌레 너에게 해줄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야 네가 나중에 커서도 나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기에. 곧 사춘기가 와서 더 이상 엄마 말이 곱게 안 들릴 것이니 지금 열심히 전해야 할 가치와 훈계를 네 마음에 새겨 넣고 있다. 네가 점점 놀자고 하지 않을 것이기에 친구들과의 계모임도 이제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애쓴다.
자기소개서를 열어 다듬어보기도 하고, 다른 이력을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고민도 해본다. 네가 나가서 우리 엄마 작가라고 한다고 하니 매일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계속 가고 싶기도 하다.
네가 학교에 간 사이 집에서 너의 피아노 소나티네 교재를 펼쳐 소나티네 1번 피아노 곡을 연습하고, 네가 쓰다 버린 유화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림도 그려보며, 내 남은 평생을 나비시절 흠모하던 '음미하는 여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꿈꿔본다.
엄마는 네가 날아가고 남겨진 허물, 껍데기 말고 다시 알이 되고 싶어.
네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날,
너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나도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날지 모르는 무궁무진한 꿈을 가진 알. 엄마는 더 성장을 하고 싶다.
오늘의 온전한 성장을 찾아서
올곧게 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