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자는 뒤척뒤척 배 한 척 띄운다
정말 궁금하다. 글쓴이들은 이 밤, 잠을 잘 자고 있을까?
홀로 글쓰기는 나에게 깊은 잠을 주었는데,
마주 보는 글쓰기는 잠결 속에서도 낮처럼 무언가를 놓칠세라 생각을 바삐 움직이게 만든다. 잠이 개운치 않다.
[홀로 글쓴이의 잠]
나는 누구보다 잠이 소중한 아이였다. 어릴 적 사진 속 나는 죄다 울고 있는 모습이다. 내 부모는 좋은 곳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자, 자는 나를 깨워 사진기 앞에 세웠다고 한다. 잠투정 많은 아이는 사진에 남겨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잠을 빼앗겨 마냥 울고 있었다. 나는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도 낮잠, 쪽잠을 사수했고 원대한 꿈, 목표, 경쟁자도 내 잠을 쉽게 깨우지는 못했다.
30대 중반에 부모가 되어 아이 반응에 민감해진 후 조그만 뒤척임에도 잠에서 쉬이 깼다. 잠보다 소중한 무엇이 생겼으니까. 내 잠을 이긴 최초의 포식자가 등장한 것이다.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고 성장하니 새벽에 깨서 엄마를 찾는 일도 줄어들어 나는 다시 잠다운 행복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단잠의 새 아침을 맞이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가끔 심장이 빠른 제자리걸음으로 내 애틋한 단잠을 쫓아낼 때가 있다. 가령 다음날 여행에 가서 입을 옷을 구상하든지(이건 설레서), 출근해서 해야 할 업무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든지(이건 걱정이 많아서), 억울한 사정이나 거절할 말들을 고치고 다듬느라(이건 소심한 기질 탓) 잠을 못 이룰 때가 있다.
더 누워있어도 잠은 물 건너갔으니 일어나 홀로 앉아 글을 썼다. 나와 독대하는 시간 속에서 다듬지도 정제되지도 않는 내 마음이 글이 되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마음이 불편하고 어지러운 날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호흡이 가라앉고 심장이 차분한 요조숙녀가 되어 포근히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마주 보는 글쓴이의 잠]
마흔에 일을 쉬며 평생학습원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에 수줍어 남몰래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종강이 다가올 때 참여자들이 쓴 글 두 편 씩을 다듬어 작은 책으로 엮었는데 그 재미가 나름 감동적이고 좋았다. 사십 대부터 팔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어우러진 사람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글을 통해 글쓴이의 삶을 이해하고 내 글로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이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는 내 '마주 보는 글쓰기'의 시작이 되었다.
글쓰기는 안팎으로 이로운 것이니 내 미약한 글로 사람들과 마주 보고 소통하며 사는 것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은 심지도 꽂지 않고 순간 타올라 덜컥 2026년 1월 브런치스토리 작가 신청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전에 글을 써본 경험이나 다듬어진 글이 없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아 쌓아 놓은 글 밑천이 없지만 과감하게 미지의 이 세계로 뛰어들었다. 인생 어느 지점에 뭔가 확 저지르고 싶은 그런 날이 찾아온다는데 실제인가 보다. 나에겐 바로 그날이었다.
마흔 넘어 글 자국 남기는 수레바퀴에 올라타 글쓴이로 시작은 했으니 누가 봐주지 않아도 글은 써야 한다. 쓸 소재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니 낮부터 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내 경험을 훑는다. 나의 아픔과 마주하여 울렁거리기도 하고 산발적으로 불쑥 올라오는 생각, 감정을 추적하느라 정신이 산만하고 어지럽다. 잠시 이런 미래에도 간다. 이러다 노년에 책내는 작가 선생님되는 거 아니냐며 잠시 피식 웃기도 한다.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잠시 모든 회로가 끊긴다. 낮이 이렇게 바빠졌다.
글쓴이가 되어 잠자리에 든 밤은 더 바쁘다. 이성의 끈을 놓은 생각은 자유롭게 다른 생각을 물고 오고, 감정은 감정을 끌고 오고, 문장은 문장대로 흘러간다. 잠자는 중에도 이리저리 떠돌다 흠칫 그 귀한 것을 놓칠세라 기억하느라 긴장하고, 나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고 헛도는 부유 중인 배가 되었다. 낚싯대가 여기저기 걸리고 깜박이는 조명들로 불이 꺼지지 않는 배가 되어 잠이 여간 개운치 않다.
생각해 보니 글쓴이의 꿈이 내 잠을 깨우지도 않는다. 내 꿈은 지극히 소박하고 원대한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달갑게 살기로 썼으니 달갑게 살려고 애쓰고, 엄마로서 재미있게 살기로 썼으니 재미를 새기느라 애쓰고, 애쓰는 누군가를 글로 잠잠히 미소 짓게 하는 것, 내 이름처럼 나와 이어진 것들을 잘 이으며 사는 것. 내 글처럼 사는 것이 내 꿈이거늘......
글쓴이가 되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자를 위한 격한 환영식 같은 것인가? 가라앉을 열병인가? 다시 오지 않을 창작자의 첫 열정인가? 자주 오지 않을 즐거운 몰입인가? 곧 끝이 날 불꽃놀이인가? 계속 글쓴이로 산다면 나의 소중한 잠과 영영 이별해야 하는 것인가?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고 싶다.
'낮처럼 잠결에도 나는 이로운 일을 위해 애쓰고 있구나. 내 인생에 다시 잠을 깨우는 무언가 재미나고 소중한 일이 생긴 거구나.' 하며 잠시 멀어진 잠에게, 글쓴이로 시작하는 나에게 긍정적인 회로를 놓아본다. 밤낮 정처 없이 떠도는 나의 경험, 생각과 감정들이 내 밑천들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그냥 꿈도 꾸지 않고 잠을 푹 자고 싶다. 아니다. 잠결 위에 낚싯대 걸고 뒤척뒤척 배 한 척 띄운 잠 못 드는 이 밤이 마냥 감사하다.
그리고 마주 보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글쓴이들의 숱한 낮밤이 만들어낸 이 이로운 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이다.
더불어 글을 쓰듯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의 자국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말이다.
글쓴이는 안녕히 잠을 잘 주무시나요?
ㅡ시작하는 글쓴이 이을 ㅡ